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은 오래된 도시이면서 새로운 도시다. 오랫동안 한국의 수도지만 조선시대의 사대문을 표시해주는 징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콘크리트 숲 속에 왠 문, 쯤으로 인식될 수 있다. 사대문 안의 풍경 역시 과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서울을 이루는 건물들은 새롭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조금만 낡아도 헐어내고 새 건물을 짓는다. 새로운 건물 재료 전시장 같다. 내가 보기에는 대체로 시커먼 건물이 다 그 건물같아 보인다. 더구나 우리의 시선 반경을 수십 배도 넘는 건물 높이는 건물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힘들게 한다. 우리의 시선은 주로 간판에 머문다. 건물만큼 많은 간판들은 건물을 가리고 눈에만 띄게 하려는 욕구를 드러내며 고함치고 있는 거 같다. 서울 거리 풍경에 대해 말하라면, 어둡고 흉물스럽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의 눈은 역시 다르다. 평범하고 어두운 거리에도 차이를 구별해내고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책에서 다루는 많은 건물들과 다리들은 우리가 늘 지나다니는 곳이거나 한 번쯤 지나친 적이 있을 법한 익숙한 대상들이다. 그저 높고 네모난 건물들과 한강 남쪽과 북쪽을 이어주는 철교들에 숨어있는 건축가의 의도를 찾아 보여준다. 사방이 콘크리트인 서울에도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들어있을 수 있다는 데 우선 놀랍다. 저자의 서술방식도 큰 역할을 한다. 쉽고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냈고 설명을 끌어가는데 풍부한 감수성이 흉한 건물들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한 사람의 전문성과 감수성으로 빚은 건물 다시 들여다 보기는 책을 옆에 두고 책 속 건물을 지나칠 때마다 펼쳐보고 싶게 한다. 어제는 길을 걸으며 차를 타고 고개 높이 들어 꼭대기까지 올려다봤다. 건물 모서리나 창도 유심히보고. 이 책의 미덕은 이렇게 한 번 다시 봐 보라고 권유하는데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반인은 건축가가 아니니까 건물을 보면서 저자처럼 건축가의 생각을 읽어내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어떤 건물이 미적 가치가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서울은 일반인이 보기에 아름다운 건물들은 사실 드물다. 자연을 고려하고 행인을 고려하는 건물물을 떠올릴 수 없다. 우리의 최신식 건물들은 하늘이나 태양을 즐기도록 만들기보다는 차단하고 실내를 따뜻하고 시원하게 만드는데 치중하는 거 같다. 현대식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조금 낡고 불편해도 반짝반짝 닦여 정감있는 건물, 불편함을 기꺼이 참을 수 있는 건물이 담긴 서울을, 전문가의 눈이 아니라 일반인의 눈으로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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