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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 Like You Know It A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저녁 약속 시간 전에 시간이 남아 중앙극장으로 무작정 갔다. 홍상수 감독 영화는 다시는 안 볼 것을 결심한 적이 있다. 결심이란 얇은 유리 같아서 기회만 생기면 깨지기 마련이다. 시간에 맞는다는 이유로 가볍게 내 결심을 깼다.
다시는 안 보겠다고 거품물게 했던 진부함은 조금 줄어들었고 더불어 낄낄거리게 하는 장면도 줄었다. 인물이 여전히 술을 마시지만 술마시는 장면보다는 술을 마신 후 인물의 숨겨진 본능에 초점을 맞춘다. 초기작들에서 느꼈던 예리한 시선은 아니어도 적어도 인물들이 질척거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홍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간 스트레스를 나름 많이 받은건 아닐까. -감독님은 왜 이런 영화만 만들어요? -감독님은 왜 자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나 자신도 모르는데 다른 이야기를 어떻게 해. 인터뷰에서나 만날 것 같은 대사들이다. 인터뷰 혹은 기자회견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극중 구 감독은 별 뜻 없이 한 행동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파렴치하다고 몰아붙인다. 영문도 모른 채 그는 당하는 순수한 예술가다. 이런 극중 구 감독의 심리가 감독의 고백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
분명한 건 명민했던 그의 초기작들과 달리 이 영화는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감독이 길을 잃었기 때문일 거다. 다시 예리한 시선을 회복하기에는 술은 이제 자극제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