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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부르는 파리 - Pari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지난 주 토요일 서울신문사 앞. 버스는 길가에 종대로 서 있는 전경버스 틈사이에서 멈춰섰다. 전경버스 틈새를 비집고 인도로 나오자 거리에 깔린 전경들이 행인보다 더 많았다. 익숙하고 낯설었다. 이십대 초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에 내가 전경들 또래였다는 것. 횡단보도를 찾느라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시야에는 온통 닭장차. 하늘도 길도 모두 닭장차가 조각내고 있었다. 코리아나 호텔 뒤에 있는 광화문 스폰지까지 걸어가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대로변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고요하고 평온했다. 내 마음 속 동요도 가라앉고 대로변의 풍경을 멀리 밀어낼 수 있었다.
영화는 파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방인에게는 파리는, 특별한 소풍지이지만 그 공간에서 일상에 부딪치는 사람한테는 서울과 다름없다.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교통사고가 나서 죽는 사람도 있고 하룻밤 즐겨볼 생각으로 이성에게 추근대는 사람도 있다. 또 혼자 아이 셋을 키우며 직장생활하느라 건조해져버린 사람도 있고 구조조정에 일자리를 잃어서 고민하는 사람, 어린 제자를 사랑하게 된 나이 든 교수도 있다. 그 누구의 삶도 녹록해보이지 않는다.
밤마다 에펠탑은 반짝이며 시선을 끌고 사크뢰 쾨르 성당 앞은 햇살로 넘쳐나고 곳곳에 있는 카페는 낭만적 삶까지는 아니어도 낭만적 이야기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엽서나 사진에 담긴 사진이나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는 환상의 씨앗이다. 사진이나 이미지 속에 우리가 들어갈 수 없으니까. 서울이란 도시가 환상을 줄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들어와있어서다. 사진이 아니라 내 눈과 귀가 서울을 신문이나 잡지가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축복이면서도 악몽같다. 성공률이 사십 퍼센트, 즉 실패률이 육십 퍼센트인 심장수술을 받으러 가는 한 젊은 남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어찌됐건 살아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