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케이블 채널 번호는 어떤 예고도 없이 바뀌기 일쑤다. 오락 채널 찾느라 한참 버튼을 누르고 즐겨 찾는 채널 번호를 암기할 만하면 또 번호가 홀딱 바뀐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참 공급자 중심적 발상이다. 이번에 화면 상단에 뜬 안내 문구에는 디지털 작업 어쩌구 저쩌구 적혀 있었는데 용서가 되는 게 안 나오던 채널이 몇 개 더 나온다.ㅋ 그 중 하나가 screen이란 채널이다. CGV나 OCN 같은 영화 전문 채널이라고 선전하는데 자정만 넘으면 영화라고 볼 수 없는 19세용 성인 영화를 줄기차게 내보낸다. 주로 자정 이후에 TV를 보는 내게는 CGV나 OCN은 쓰레기 채널이다. 새로 추가 된 SCREEN 채널은 그 보다는 조금 낫길 바라며 실제로 그런 거 같다.-광고도 딱 한 번만 했다-어제 <캔디>를 틀어줬다.
극장 상영할 때도 찾아가서 볼 만큼의 흥미는 아니지만 누워서 볼 정도의 관심은 지니고 있었다.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 마약에 빠진 커플의 마약과 같은 사랑이다. 사랑도 마약도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랑은 일단 빠져 나오면 추억으로 남지만 마약은 빠져 나와도 유혹으로 남는다. 마약이 철저히 규제되는 한국에서 마약에 관한 영화에 감정을 이입하는 건 쉽지 않다. 서구에서 마약은 더 보편적 사회문제이니 종종 마약의 험난함을 다룬 영화가 나온다.
영화는 단촐하면서도 환각 상태에 빠질 때 삽입 된 몽타주는 강력하고 아름답다. 몸은 축 늘어져 침대에 있는 데 정신은 천국을 훨훨 날아다니는 표현 방법. 아마도 저런가보다, 하고 미루어 짐작한다. 마약에 빠지는 이들은 보통 사람보다 의지가 약하고 그 이유는 영혼이 더 가녀리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영화를 보면서 저자 미상인 <Go Ask Alice>란 책이 떠올랐다. 실제 있었던 열 다섯 살 소녀의 슬픈 일기다. 사춘기에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산층에 속하는 부모와도 소통하지 못해 우연히 마약에 손을 대고 가출을 하고 마약과 갱생을 반복한다. 소녀는 결국 중독이란 고리에 질식당한다. 이런 줄거리보다 소녀의 내면 고백을 통해 얼마나 겁을 먹는지 일반인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늘 마약의 달콤함에 노출에 두려워하고 달콤함을 뿌리치지 못하는 데 절망하는 소녀의 일기는 어둡고 처절하다. 표지를 넘기면, 이 책이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지만 삶에 대한 통찰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편집자의 말이 쓰여있다. <캔디>란 영화 역시 어떤 해결책이나 섬세한 내면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이미지를 통해 지옥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