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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눈물 - 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제임스 엘킨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아트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책을 읽기 전에 눈물과 관련된 그림 읽어주는, 그렇고 그런 책인 줄 알았다. 연휴에 뒹굴거리며 별 기대없이 펼쳤다가 흥미진진해서 손에서 놓기 힘들었다. 표지에서 짐작할 수 있는 기대를 깨고 감상의 자세를 다루는 글이다. 첫 장을 읽으면서 나는 그림을 왜 보는가, 왜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가, 그림을 정말 좋아하는가,등의 질문들로 이루어진 자가 최면을 걸면서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림과 눈물의 함수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림을 감상하는 태도에 진지하고 깊숙하게, 그리고 지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20세기 미술과 미술사가들의 태도에 반기를 든다.
"20세기는 메마름의 위대한 선조인 16세기에 비교된다. .....20세기 회화는 적나라한 감정들과는 무관한, 갖가지 쟁점들을 제기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시각예술가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이레 초점을 맞췄고, 자신들의 그림을 철학과 역사와 비평, 정치, 젠더 연구와 정신분석에 연결하는 수많은 가닥의 실을 꼬아 천을 짰다. 최근 훌륭하다고 하는 작품들은 자기 인식과 자기 해석에 깊이 파고드는 것들이다. 그 모든 것을 더 잘 파악할수록 내가 여기서 상술하고 있는 감정의 힘(눈물을 동반하는 감동)에서는 더욱 멀어진다."(274-275)
그렇다고 20세기 미술이 모두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마크 로스코의 예배당이 주는 감동의 뿌리를 찾아 내려가면서 이 책은 시작하니까. 아는 만큼보인다는 말이 있다면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저자가 취하는 관점은 바로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림이 어려운 예술 범주로 분류되는 데 미술사가들의 태도 역시 지대한 기여를 했다고 한다. 그림이 그려진 역사와 이야기 중심으로 논의되는 게 무가치하지는 않지만 감동을 앗아간다. 우리는 책에서 읽고 서술된 부분을 미술관에서 확인하는 일차원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문화적 계급 사회에 알게모르게 동화되어 왔다. 길들여진 관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철저하게 길들여진 관객 중 한 명이 바로 나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고 미술사가들이 말해주지 않은 영역은 전혀 볼 줄 모르는 한심한 관객.
관객의 입장에서 학습은 양날의 칼이다. 학습으로 즐거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몰랐던 그림을 알게 되는 즐거움 반면에 알수록 생각이 열리는 게 아니라 닫히는 괴로움이 그것이다. 이 점에 대해 엘킨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억 이론에 대한 반전을 통해 믿음직한, 그리고 편안한 대안을 제시한다. 기억과 시간은 여러가지 면에서 억압이란 자루에서 다뤄져왔다. 그러나 엘킨스는 "기억이 매력적인 이유는 불안정하기 때문"이니고 "인생이 바뀌면서 기억도 바뀌어서" 자신의 해석대로 그림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스탕달 신드롬에 빠질지 마크 트웨인의 해독제를 먹을지는 선택하는 건 각자의 몫으로 남지만 열정 결핍자로 살아가는 나라면, 스탕달 신드롬에 빠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