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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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외국인 친구들을 서울에서 맞이할 때가 있다. 그들은 대부분 서울의 과거를 꿈꾸고 서울을 찾아온다. 서울의 현재만을 알고 있고 서울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의 흔적보다는 서양의 흔적을 찾는 내게, 그들이 동경하는 서울은 낯설기만하다. 친구들의 등장은 그들의 관점에서 서울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익숙한 서울이 아니라 감춰진 서울의 얼굴을 그들 덕분에 발견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서울이란 내 생활 반경에 한정된 지극히 작은 부분이고 그 작은 부분조차도 왜곡있다는 걸 깨닫곤 한다.   

이 책에서 "중세 서울"이란 낯선 말을 만났다. 아, 서울에도 중세가 있었구나. 중세란 말은 아주 익숙한 말이지만 중세 유럽이란 복합명사로 익숙하다. 중세 유럽사를 찾아 읽고 십자군 전쟁까지 찾아 읽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중세 서울에 대해서는 말 조차도 어색하니 나, 한국인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통사론적 시간 개념이 서양사와 한국사가 다르다. 한국사에서는 신라, 고려, 조선 등등의 왕조 중심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중세사에 대한 개념이 희미하다. 여러 왕조가 흥하고 망하면서 후세에게 하나의 공통된 시간을 만들어 알려야 하는 필요에서 유럽은 중세란 말을 고착시켜야 했을 터이다. 반면에 한국은 단일 민족으로 왕조 개념으로 충분히 역사교육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교육을 위한 기술이다.

중세 유럽 도시들을 거닐다보면 전통이야 어쨌건간에 가옥이라든지 골목이 잘 보존되어 있어 감탄을 거듭하고 부러할 수밖에 없다. 서울은 늘 공사중이고 그 모습이 시시각각 변한다. 있었던 건물이 없어지고 없었던 건물이 어느 날 불쑥 솟아있다. 한동안 가지 않았던 곳에 가면 낭패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이란 공간에 대한 애착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추억이 담긴 공간은 포크레인이 퍼올린 흙에 묻혀 사라지니 말이다. 서울은 추억보다는 편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도시다. 공간은 물론 사람의 사고에서 탄생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사고를 지배할 수도 있다. 지금은 우리가 공간을 현명하게 사용하기 보다는 공간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주변의 주거조건은 배려하지않고 용적률의 확장이 마치 현명한 해결책인 것처럼 굴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한탄스러운 서울을, 서울에 사는 게 조금은 부끄러운데, 이런 서울을 사랑스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다. 서울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 무엇인지 환기시킨다. 사라지고 변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타당해서 그의 한숨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왜 서울의 골목들은 막다른 골목이 주로 있는가. 평소에도 정말 제일 궁금했는데 그 답이 이 책에 있다. 왕조의 서울이었던 성 안이 아니라 성 밖의 서울, 즉 지금의 서울 공간이 된 여러 곳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시사적 관점은 통사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장점이 있다. 이런 좋은 책은 많은 사람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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