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디 앨런의 영화같은 분위기다. 수다스럽고 현실감 없어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리고 이따금씩 소리내어 웃게 만들지만 웃고난 여운 속에 고통을 초월해서 관조적 자세를 취하도록 하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끽할 마음만 준비가 되면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즐길 수 있다.

<갈라파고라스>는 <제5도살장>보다도 더 탈중심적이고 더 탈서사적이다. 백만년 전 갈라파고라스에 와서 살게되거나 또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백만년이란 인간에게 상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시간이다. 고로 시간이 이 소설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귀띔해 주는 말이다.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보네거트의 화법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닮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백만년 전에 큰 뇌를 가진 인간들의 이야기 구석구석에서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화자인 '나'의 존재를 불쑥 드러내는가 하면 추측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가 보는 세계란 밥 맛이 없는 세계다. 인간의 견해는 시시각각으로 변할 뿐 아니라 호들갑스럽고 "병적 인격"를 가진 인간이 유복한 사람들 축에 든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만 정작 자신들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인격이며  또 다윈의 자연 선택의 법칙에 부합하려면 도처에 두려워할 게 널려있지만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뒤로갈수록 더 잔혹한데 잔혹함이 유머로 포장되어 어리둥절하다보면 마지막 페이지에 이른다. 삶이란 우왕좌왕하다보면 보네거트의 소설처럼 끝나있는 게 아닐까, 하면서 두려워진다. 아무래도 난 다윈의 법칙에 부합하는 유전자를 갖지 못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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