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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기행 ㅣ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4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평점 :
역시 카잔차키스 옹이시다. 다각적 관점으로 스페인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다. 한 개인이 가치관을 형성할 때 정보의 접근성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은 스페인 기행이지만 흔히 구할 수 있는 그런 정보 책자는 물론 아니다. 더불어 여행 여정을 기록한 책도 아니다. 스페인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샘을 찾도록 이끌어주는 그런 기행이다.
카잔차키스의 시선을 통해 스페인 문화의 특징이 혼종성hybrid에 바탕을 둔다는 걸 깨달았다. 길 떠날 준비를 하면서 그야말로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내가 왜 스페인에 낙점을 찍었는지..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독서였다. 기독교 문화, 이슬람 문화, 유대 문화의 혼재는 다른 기독교권 나라들이 갖지 못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땅 덩어리가 크니 기후의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슬람 문화의 번성과 몰락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스페인이다.
이런 이야기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통찰력 역시 외로울 때 보면 마음의 위로가 될 거 같다. 2부는 스페인 내전에 관한 풍경인데 스페인 내전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한국전쟁이 현재는 교과서에서나 학습되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분위기가 예술 곳곳에 나타나는 것 처럼, 스페인 내전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전쟁을 겪었던 이들이 고민하는 목소리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번역자의 해제를 보고 알았는데 카잔차키스는 독재자 프랑코를 지지하는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거의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카잔차키스가 지지한 사람이 독재자라는 사실에 살짝 놀랍기는 하지만 스페인 내전이란 한국전쟁 보다도 희미한지라 빨치산 내지는 친일파쯤으로만 여겨지는 우둔함을 버릴 수 없다. 난 그저 그의 통찰력에 기대어 많은 새로운 세포들을 이식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