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니어 클래식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는데 주니어 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아주 훌륭한 입문서다. 자본주의의 탄생과 변화를 쫒으면서 심리적 동기를 찾으려는 베버를 쉽게 풀어썼다. 뒤늦게 베버를 읽으려고 마음 먹고 있던 차에 저자 덕분에 한결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2. 자본주의 생성을 종교라는 문화적 맥락에서 본다.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이 등장하면서 성서 해석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다. 종교개혁 이후의 신교의 분열을 간략하게 정리했는데 읽으면서 저자가 그랬듯이, 나도 내 이십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종교에 관한 책들로 씨름했 지만 아무 것도 몰랐던 그 때로. 지금도 역시 아무 것도 모르겠지만 맞아 그랬었지..하는 반가운 끄덕임 속에 다시 한번 간략한 계보를 홅을 수 있어 즐겁다.
21세기에 종교는 지름신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노동은 프로테스탄트들에게는 구원의 수단이었다면 소비사회에서 노동은 지름신을 받들기 위한 행위로 전락한다. 시간은 돈이라는 등식은 현대인에게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명제다. 3부의 현대 사회에 관한 글은 사실 조금 약하지만 주니어 클래식이란 점을 생각하면 태클걸고 싶지 않다.
3. 난 참 이율배반적 인간이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형 인간이다. 내 생업도 자본주의형 인간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시간과 지식을 파는 거다. 그들의 심리를 부추기기도 한다. 때로는 내 노동력에 감사하지만 때로는 내 노동력에 혐오를 느끼기도 하는 싸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노동에 대해 현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근대적(저자의 말에 따르면, 살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내 분열적 삶은 바로 노동에 대한 서로 상반되는 이중적 가치 때문에 생긴다. 한편으로는 노동에 매진해서 지름신의 신도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한쪽에서는 지름신에 대한 저항이 존재한다. 남들과 같고 싶지 않은 자의식이 저항의 양분이다. 부를 위해 일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하급 개념에 영혼을 갉아먹히고 있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은 영혼을 파는 이들을 피하는 수동적 자세를 취한다. 나 역시 자본주의에 순응하고 이용하는 인간이면서 말이다. 그래서 때때로 괴테의 말에서 위안을 삼는다.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적어도 나는 노력은 하고 있잖아,하고 비겁하고 게으르게 자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