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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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모르는 작가의 소설을 집어들 때, 가끔은 표지도 선택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엔도 슈사쿠. 모르는 작가지만 일본 문학에 대해 벽을 쌓고 있고 그 벽의 높이를 조금 내려 볼까, 하는 기특한 마음도 있었다. 결과는..좋지 않다.

공교롭게도 불문학을 전공한 작가란다. 왜 공교롭냐면, 처음부터 끝까지 프랑스와 모리악의 <테레즈 데께루>의 관념을 차용한다. 관념을 차용한 거 까지는 좋다. 원래 창작이란 게 선배 세대에 축적된 결과물을 딛고 일어난다지 않는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마쓰꼬를 <떼레즈 데께루>의 여주인공 모이라와 계속 병치시킨다. 마쓰꼬를 독립시키기 보다는 전적으로 모이라의 심정과 행적을 참조하고 있다. 패스티쉬적 특성, 상호텍스트적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끌리거나 울림을 주는 작품은 아니다. 기발하지도 않다. 작가의 의도가 이야기 구성 전체에서 반복된다. 깊이는 느껴지지만 그 깊이에 성큼성큼 들어갈 수는 없다. 공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반적 분위기는 죽음의 이미지를 비롯해서 쓸쓸하고 인간의 본질적 고독을 탐구한다. 인물들은 적절히 나이들고 삶에 대한 충동이 부질없다는 성찰에서 나온다. 강은 죽음과 생명의 이미지를 품고있다. 삶과 죽음, 인간의 본질을 갠지즈강에 가서 펼쳐보인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는 현실에서 한 발 물러서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갠지즈 강을 택했겠지만 난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현실에서 떨어져서 보는 삶과 죽음은 책 속의 삶과 죽음을 구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책을 통해서 이미 현실과 유리된 위치에 있는데 작가의 갠지즈 강을 통해 한 번 더 떨어진 세계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깊은 강>은 누군가에게는 깊은 공감과 감명을 주었겠지만 나는 투덜거리고만 있다.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책은 없다. 사람과의 인연이 타이밍인 것처럼 책과의 인연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은 맞았지만 아쉽게도 정서적 소통의 목적과는 거리가 먼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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