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적인 삶 - 제100회 페미나 문학상 수상작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밝은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베스트 셀러 소설책들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3분의 2쯤 읽었을 때 후회했다. 사서 읽을걸 하고. 지금이라도 주문할까 했지만 한 번 읽은 소설들은 두 번 읽게 되질 않으니 소유욕을 자제하는 게 의젓해 보인다. 장폴 뒤부아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제목 때문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소녀적 감수성을 판매전략으로, 일주일 간의 휴가 내지는 체류를 경험한 이들의 감상적 환상에 봉사하는 '프랑스적인' 어쩌구 저쩌구하는 허섭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책들이 나오면 서점에서 기웃거리며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대조해보는 취미를 갖고 있지만-.-)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다 제목 때문이다. Une vie francaise=a French life지만 소설의 내용대로라면, 한 프랑스인의 삶이라고 해야 작가의 의도에 더 가까이 간걸거다. 번역자가 이를 모를리 없을 것이고, 프랑스 더 정확히 말하면, 파리의 화려함에 대한 환상을 부추길 수 있는 제목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외면해왔으니 약간 억울한 마음에 제목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놨다.

한 프랑스인이란 바로 폴 블릭이다. 간혹 블록이라고 오해를 받기로 하는 사람. 그는 "남아도는 정자로 인해 태어난 신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일어난 배란의 실수" 였다. 이렇게 태어난 그는 소설의 화자로 54세이고 "삶에 대한 두 가지 전망 사이에서, 모순되는 두 세계 사이에서 망설이는 거북한 나이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에는 세월에 따라 주름이 늘어가며 규칙적으로 칼슘과 협심증 치료제를 복용하고, 담배를 끊고 혼자 살며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늙어가고" 있다. 54년을 살면서 겪은 여러가지 일상적 일들 속에 유독 죽음을 목도하는 빈도가 높다. 첫 챕터 드골 시대에 형 뱅상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장 시라크의 장에서는 숨 쉬고 있지만 죽어있는 딸의 모습으로 끝이난다.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 아내 안나의 사고사 등. 프랑스라는 한 국가가 여러 대통령을 맞이하면서도 진보이라는 말과는 별개일지라도 계속 존재하는 것처럼, 소심하고 현실세계 밖에 위치했던 폴 블릭에게 가족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죽었지만 아들과 딸이 살아 있고, 아들의 아들이 태어나서 블릭家는 지속된다.  

지난날 위풍당당했던 드골이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고 68혁명이 일어나고 교활한 미테령도 사라졌듯이, 좌파 운동을 하던 팔딱거리던 심장을 지녔던 20대의 폴 블릭은 희미해지고 어쩌면 자신의 문제 밖에는 관심이 없는, 느리게 유영하는 50대의 폴 블릭이 되었다. 더 나이가 들면 앞서 사라진 정권자들처럼 그도 아들에게, 손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게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염세적이지만 비관적이진 않는 게 폴 블릭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한 사람의 삶을 글로 적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면 폴 블릭의 세상살이보다 결코 무게가 적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서술할 능력이 불행히도 없다. 대신 뒤부아의 폴 블릭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뿐이다.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삶, 요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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