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달은 환경이 바뀌어서 적응하느라 심리적으로 무척 분주했다. 조용히 앉아서 한 해를 정리하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시간의 흐름을 서류철에 묶어서 분류할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똑같이 보냈다. 돌이켜보면,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그 변화를 마주했을 당시에는 변화인줄 모르고 지나쳤던적이 대부분이다. 오랫만에 안부를 주고 받는 지인들에게 늘 난 똑같은 대답을 한다. 난 항상 똑같아. 한 선배가 어느날 문득, 항상 변화를 꿈꾸는 네가 오늘은 부럽구나, 하는 문자를 보내왔을 때도 난 항상 제자리에 있어, 하고 답장을 보냈다.  

 
2008년 첫 주도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해를 이루고 한 해가 모여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걸 이룬다는 걸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습관적으로 살고 있다는 걸, 가끔 깨닫고, 더 가끔 끔찍해하면서 더더 가끔 반성한다. 에너지는 예전만큼 왕성하지도 않아 덤덤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든 경험을 쌓는 일이 축복받은 일이라고 가슴으로는 생각하면서도, 머리로는 포기와 체념을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머리를 숙이면 가슴이 보이는데 머리는 앞만보고 가슴과 더 멀어지고 있다. 그래도 머리만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를 저절로 피하고 싶다. 그들에게서 내 모습의 일부를 보기도 하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이들과 가끔씩 기울이는 술잔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허삼과 매혈기>에 홀딱 반해서 집어든 <인생>. 위화는 서문에 이런 말을 썼다. "나는 <인생>이 눈물의 넓고 풍부한 의미와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위화 소설의 힘은 바로 절망의 부재다. 인생은 푸구이란 노인의 일대기이다.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사위와 손자까지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면서도 푸구이는 슬프지만 계속 살아야한다. 사랑하는 이를 모두 잃은 삶 속에 기쁨이 존재할까, 싶지만 푸구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홀로 지낼 수 밖에 없었지. 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 살 줄 누가 알았겠나. 나는 여전히 그 타령이야. 허리도 자주 쑤시고 눈도 침침하지만 귀는 아직 쓸만하지...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아주 안심이 돼. 우리 식구들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나는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네. 내가 죽을 차례가 되면 편안한 마음으로 죽으면 그만인 거야. "
 

모든 절망을 딛고 얻은 푸구이의 관조적 자세는 애처롭지만 살아가면서 배워야할 지혜가 아닐까. 이제 늙은 자신의 곁에 남은 건 자신을 닮은 늙은 소 한마리 밖에 없지만 푸구이는, 그래도 계속 살아갈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지만 포기해야하는 일을 분류하며 때로는 나 자신을 다독이며 또 때로는 어깨를 툭치며 격려하기도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걸 본다. 먼 훗날 이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푸구이처럼 미소지을 수 있다면, 그러면 된거라고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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