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조경란 작가에 관한 기억은 이렇다. 어느 해(검색해보니 96년이라고 나와있다) 동아일보 1월1일자 신문에서 그녀의 등단작 <불란서 안경원>을 흥미롭게 읽었다. 안경원에서 유리문을 통해 바라 본 세상을 읽으면서 관찰자적 입장이 가질 수 있는 거리감에 끌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읽었던 소설은 <식빵 굽는 시간>. 식빵을 굽고 식빵의 냄새를 묘사하면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서술방식에 또 한 번 끌렸다. 그 후 <불란서 안경원>이란 소설집을 읽었지만 두 작품만큼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지난 달, 알라딘이 발행하는 잡지, 스쿱에서 그녀에 관한 에세이를 읽었다. 한 화가가 말하는 그녀였다. <혀>는 이런 기억의 연상작용을 통해 궁금증을 유발했다. 어떤 소설일까. 함께 주문했던 책들 중 제일 먼저 집어들었다.

<혀>를 즐겁게 읽을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 침이 고이는 소설을 쓰려고 했다는데(후기에) 내 입안의 침은 고이기는 커녕 마른다. 난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욕망이 없는 건조한 인간일거다.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너무 맛있는 음식이란 없고 음식은 배고프다는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차원적 도구일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 하나는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고로 길게 묘사되는 요리 재료들과 레시피에 어찌 침이 고이겠는가. 소설 속 비유들은 이런 재료들에 대한 기본적 애정이 있어야 안타깝기도 하고 심장이 부풀어 오르기도 할터. 쩝.

2. 플롯. 그녀의 소설 세 편은 모두 닮아있다. 이미 헤어진 사랑에 대한 기억 조각들을 나열한다. <불란서 안경원>이 그라는 존재를 어렴풋하게 드러냈고, <식빵 굽는 시간>은 좀 더 선명하게 그를 드러냈고, <혀>에서는 노골적으로 그를 드러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의 생각도 바뀌고 소설을 쓰는 방식도 바뀌었듯이, 나도 변했다. 끝난 사랑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을 말하는 소설에는 더 이상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랑은 가고 오기 마련이며 사랑이 오지 않아도 사람은 독해서 잘 살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요리장면 사이사이에 회상 또는 이야기처럼 삽입되는 방식은 상당히 속도감있지만 그 속도감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 단순하다. 책 한 권이 그러니까 '나'의 일기에 가깝다. 남의 일기를 읽는 건 그 사람을 알고 있고 나와 관련있을 때나 재밌다. <혀>의 그녀 '나'는 철처한 허구 속 인물처럼 다가온다.

3. 분명히 섬세하고 감각적이긴 하지만 이건 아니야, 하는 소설이다. 내겐. 오히려 난 <식빵 굽는 시간>에서의 그녀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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