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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편지글의 매력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뚜렷한 서사가 있거나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구입하려는 사람과 책을 구해주는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속에서 그들의 일상을 훔쳐볼 수 있다. 훔쳐보기는 좀처럼 뿌리칠 수 없는 강력한 매혹의 수단이다.
구매자의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취향인지, 공급자의 심성은 어떤지 그의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을 알아낸다. 그리고는 이들의 외모를 상상하면서 읽고 있었고 그들이 주고 받는 정에 잠시지만 훈훈해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은 그 사람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논문을 읽고서 저자의 외모라든가 개인적 취향을 아무도 궁금해 하진 않는다. 구매자 헬렌 한프가 적은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 저는 전 주인이 글겨 읽던 대목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는 중고책이 참 좋아요. 해즐릿이 도착한 날 '나는 새 책 읽는 것이 싫다'는 구절이 펼쳐졌고, 저는 그 책을 소유했던 이름 모를 그이를 향해 '동지!'하고 외쳤답니다."
헬렌 한프의 이 말은, 새 책만 읽기 좋아하는 독자인 내게도 해당된다. 단지 동지애를 느끼는 대상이 내 경우는, 책의 전 주인이 아니라 책을 쓴 작가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책 속의 문장에 밑줄을 치거나 책장 모서리를 접을 때마다 나는 동지애를 느끼고 마음 가득 한 외로움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다. 독서는 사람한테서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위안을 준다.
p.s. 원서로 찾아 볼 것. <84, Charing Cross> Helene Han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