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
도리스 레싱 지음, 설순봉 옮김 / 예문 / 1998년 5월
평점 :
품절


도리스 레싱이 노벨문학상을 탄 후 소설을 읽으니 꼭 얄팍한 인간이 된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이 책은 도리스 레싱에 관심이 있어서 읽은 것이 아니라 고양이한테 관심을 갖게 되어서 읽게 되었다. 집 앞에 떠돌이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이 고양이들은 낮에도 가끔 보이지만 주로 어둠이 내리면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꼭 여민 쓰레기 봉투에 애타게 코를 대고 있지만 도심에서 먹이는 구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의례적인 것 같다. 사람을 무서워하기 보다는 습관적으로 사람을 보면 주차된 차 밑으로 뛰어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고양이는 개와 다르게 늘 무섭지만 앙상하게 드러난 옆구리를 볼 때마다 도심에서의 고단한 삶을 엿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이리하여 고양이의 생태가 궁금해졌고 고양이에 관한 책들을 검색했다. 사실은 고양이의 습성과 생태에 관한 책을 찾았지만 도리스 레싱이 쓴 고양이에 관한 글을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도리스 레싱이 쓴 고양이 이야기는 내 본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예리한 관찰력과 더불어 기억력에 찬사를 보낸다. 작가가 기른 고양이들에 관한 에피소드들인데 고양이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을 연상할 수 있다. 여러 부류의 인간이 있듯이 여러 부류의 고양이가 있고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관계가 있듯이 고양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관계가 있다. 전적으로 관찰자인 사람의 시선을 통해 고양이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성적 고양이와 그렇지 않은 고양이를 기르면서 작가의 시선은 상당히 모성적이고, 당연하지만 여성적이다. 이런 점은 받아들이기 불편하기도 하다.

달랑 두 권을 읽고 단정짓기는 어렵겠지만 두 권을 읽은 내 느낌은, 놀랍도록 이성적이고 간결한 문체라는 것이다. 쓸데없이 감정을 흘리는 문체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그 속에 녹아 있는 이성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이 날카로움 때문에 아프기도 하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체는 문장의 호흡을 빠르게 해서 박진감과 운동감을 더해준다. 닮고 싶은 문체지만 서걱거릴 정도로 건조해서 읽는 이에게 즐거움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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