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20
노르베르트 볼프 지음, 이영주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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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민음사에서 출판한 노발리스의 <푸른 꽃>의 표지에서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처음 보았다. 제목이 <뤼겐의 백악chalk 절벽>(1818)이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이기도 하다. 낭만주의로 분류되는 소설가와 화가의 조합은 꽤나 그럴싸하다.

백악 절벽은 석회암 절벽이다. 하얀 돌 속에 박힌 은가루가 빛나는 뾰족한 절벽과 나무가 창틀처럼 파란 바다를 나누고 있다. 붉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왼쪽에 있고 두 남자가 오른 쪽에 있다. 하얀 절벽과 파란 바다는 텔레비전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 결합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 섬의 흰색 기둥과 파란 바다가 주는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스 섬의 색깔 조합은 각종 미디어에 의해 선전되고 소비되어 잘 빠진 상품을 소유하고픈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반면 프리드리히의 그림 속 흰색과 파란 색은 쓸쓸하고 고립되어 있으며 신비롭다. 원작이 어떤 색채를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오묘한 우수를 간직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중에 혹시 볼 기회가 있을 때 이 기분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신비하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설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그림 자체가  갖고 있는 아우라가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아 저자의 설명을 무시하고 그림 자체만을 보는 것으로 즐거운 책이다.

프리드리히는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 속에 인간을 조그맣게 삽입했다. 이 대조는 자연의 거대함을 체험케 하면서 동시에 현실에서는 결핍된 것,  그러나 그 실체를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그림 속에 녹아있다.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차이점은 호퍼가 등골이 서늘한 도시의 차가운 적막을 가져다준다면 프리드리히는 광활한 자연의 열정을 가져다준다. (아, 난 전생에 아무래도 동물이 틀림없는 거 같다. 왤케 자연이 좋은거냐. 독일도 한 번 가야겠고나.) 하늘과 바다와 나무가 이렇게 흔들리는 것처럼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안 좋은 날씨 덕분이었을 수 있다. 

또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이 실내에 있으면서 바깥에 무관심하지만 프리드리히 그림 속 인물들은 바다나 산, 태양이나 달을 바라보며 바깥에 있지만 더 바깥을 응시한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 할 수 없다. 두 화가의 그림 속 인물의 상반된 태도는 실재에서 우리의 분열된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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