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철학
앤디 워홀 지음, 김정신 옮김 / 미메시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있어서 앤디 워홀=뉴요커라는 등식이 성립해 있는데 철학이란 제목으로 쓰여진 이 에세이는 이민2세인 워홀은 역시 뉴요커임을 증명한다. 특유의 가벼움과 조롱, 키치적 혼합에서 볼 수 있는 어지러움이 에세이에 스며있다. 맥락없는 단락들이 수다스럽게 늘어져있다. 특히 속옷에 대한 취향, 쇼핑에 대한 취향의 장황한 에세이는 부산한 뉴욕 한복판을 이리저리 걷게 하도록 하기도 한다.

다른 주에 가보진 않았지만 뉴욕에서 받은 인상은 뉴욕임을 강조해서 또 다른 미국같았다. 뉴욕은 일찍이 이민자의 도시로 뉴욕의 역사란 이민사나 마찬가지다. 뉴욕의 이민사 박물관에서 초창기 이민자들이 사용한 가방, 타고 왔던 배, 그려진 각국에서 오는 이민자의 숫자를 표시한 그래프를 보고나면 뉴욕이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들이 후세에게 알려줘야하는 또는 알려주고 싶은 사실이 몇 년도에 어느 나라에서 몇 명이 왔고 다음 해에는 어떻게 증감했는지 보고있노라면 이민자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데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게 다야,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집 족보를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해봤자 과거의 가족사 밖에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런 뉴욕에서 앤디 워홀의 명성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되어 개화한 곳. 워홀은 그 중심에 있었고 당시의 분위기를 잘 알고 이용했을 것이다. 대량생산을 찬양하는 시대사조, 소비를 조장하고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예술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 그다. 화가에 대한 그가 내린 정의를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후원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이 가치 있는 행위라고 믿게 만들었다.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더 가치 있는 일-그것은 그에게는 진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하는 시간은 아무런 가치가 없나는 사실을 나는 안다. 나는 내가 <작업하는> 시간에 대한 보상만을 받기를 바란다."

이 말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예술가보다는 노동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워홀이 저절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재능과 함께 주변 환경을 잘 이용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영웅 만들기를 잘 하는 미국 사회는 워홀을 이용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봤다. 역사가 없는 미국에서 역사를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겼고 시기 적절하게 워홀이 그 중심에 섰다. (파시스트적 생각일 수도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긍정적 영향이 그렇듯, 워홀은 고급문화와 하위문화의 간극을 좁히는 데 분명한 역할을 했다. 그가 죽은 후 더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과거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 향수는 아닐까.

이 에세이에는 작품은 하나도 실리지 않았지만 안타깝지 않다. 앤디 워홀의 작품 보다는 그가 살았던 방식에 더 끌리기 때문이다. 올 초 앤디 워홀의 전시 마케팅과 더불어 번역된 책인 듯 싶다. 나중에 시간날 때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 그 특유의 가벼움과 모자이크 같은 산만함이 워홀스러움을 잘 전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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