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일상 -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20년지기인 한 친구는 술 마실 때마다 내게 가식을 벗으라고 말한다.  물론 나는 가식을 싫어하는데 가면 따위를 쓰고 있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가면이 그 친구에게는 보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리하여 내게는 보이지 않는데 나만큼 나를 아는 그 친구에게만 보이는 가면은 어떤 모습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곤한다. 가면을 쓰고 있다는 말이 기분 좋을리 없지만 오랜 벗만이 그런 말을 하니 흘려버릴 수만은 없다.

또 나는 이렇게도 대답했다.  내 가식은 어쩌면 독서에서 기인한다고. 나는 책을 사랑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일주일 동안 책 한권도 읽지 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놓은지 일주일 이상이 지나면, 그러나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책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데 대한 자책감이 더 크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늦게까지 책과 씨름하고 있다. 씨름이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즐거움도 있겠지만 고통이 더 크다. 내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난 내 조건에 만족해하며 훨씬 더 행복감을 느낄거야, 라고 그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는 잊어버렸다.

내가 처한 현실과 책 속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책 속의 세계에서 낭만적 감성이나 이상적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경우에는 정의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정의로운 세계란 낭만적 감성이고나. 불의로 가득한 세계에서 희생당한 자들의 고통을 엿보고 나는 무기력하게 보고 또 보기만한다. 현실에서 가까이 있는 이들의 고통에는 의연하면서 책 속에 쓰여있는 고통에는 절망하는 이런 이중성. 이런 것이 내 가면일 수 있다.

다자이 오사무를 사무치게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언행이 일치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있긴 하지만 그 뽀족함이 부서지기 쉬운 영혼의 울림에서 비롯된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얇고 투명한  유리처럼 안과 겉이 모두 들여다 보이는 글은 가슴에 와서 박혀서 아릿하다. 라캉식대로라면, 그는 결핍을 인식하는 능력을 소유한 실재계에 속하는 인물이다.

이 책은 산문집이라고는 하지만 정돈된 문장이라기 보다는 거침없이 써내려간 일기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나는 고통이라는 가면을 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