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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책을 읽는 속도가 늦어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시 소설이 잘 안 읽힌다. 이 얇은 책을 5일에 걸쳐 읽었다. 또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아는 그가 아니다. 여성작가들의 여성성을 싫어해서 여성작가들의 소설을 잘 안 읽는데 은희경 작가는 예외다. 그의 인물들은 주변을 돌아볼 줄 알고 자기 안에 칩거하지 않는다.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도 그의 인물들은 여전하다. 외롭고 속한 무리에 적절하게 거리를 두고 있고, 작가와 함께 인물들도 나이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부하지도 않는다. 마치 그 인물들에게서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회사가 한창 몸집을 불려갈 시기여서 밤마다 약속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다음날 반드시 제시간에 출근할 만큼 몸도 욕망도 성했다. 요즘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건강관리를 할 나이가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술자리가 식상해서라는 게 더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익숙해지기까지의 절차가 갈수록 귀찮아지는 데 비한다면 거기에서 얻게 되는 신선함이나 정보는 점점 적어였다. 서로의 머릿속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않아서 주고받는 시효짧은 화제 또한 시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에 쓰인 글귀다. 누구나 나이들어가는 과정은 똑같은 것일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감탄과 함께 이렇게 꼭 집어서 쓸수있는 작가의 능력에 감히 샘이 난다. 이 단편은 젊은 날의 하루를 기억하는 이야기다. 화자의 경험은 작가의 경험일까, 아님 사귀었던 남자를 관찰한걸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대략 6년 만에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아직까지는)과 통화를 했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난 후에야 그의 목소리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 후 문자 몇 통을 받았지만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이들어가고 있는 그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나이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하다. "두려움도 없지만 설렘 또한 없다.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이 단편의 주인공이 한 말이다.
그러나 가끔 이런 생각은 한다. 우연히 지하철이나 까페 같은데서 마주친다면. 또는 인터넷으로 많은 사람을 찾는 시대인데 혹시 이런 후기를 읽는다면..어떨까? 뭐 이런 잡다한 생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