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시대 한길그레이트북스 12
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영.차명수 옮김 / 한길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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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주문한 책들은 두껍고 딱딱해서 다 읽지도 못했고, 게으르게 읽었다. 4월에 주문한 책들을 다 처리하지 못한 채 5월이 되자 마자 왕창 또 주문하고..--.-; 늦게 배송되는 한 권 때문에 다음 주에나 주문한 책들이 도착해서 꼬박 일주일이 걸리는 셈이다. 덕분에 새달에 지난 달 책을 대충이라도 읽어볼 수 있기는 했다.

혁명의 시대 역시 거의 600 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께의 압박으로 꽤나 질질 끌면서 읽었다. 두께의 압박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 '랜덤'하게 읽어버렸다.

홉스봄이 글을 전개하는 방식은 <프랑스사>를 쓴 앙드레 모르와나 <상상의 박물관>을 쓴 앙드레 말로를 연상시킨다. 다시 말하면, 다방면에 걸쳐 해박하고 에세이에 가까운 일필지휘 글이 담긴 책이다. <제국의 시대>와 <자본의 시대>도 읽고 싶지만 너무 두꺼워서 일단은 질린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시기를 다루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놀드 하우저가 19세기 문화와 예술의 사회사에서 다루었던 관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우저의 책을 읽은지 십년도 넘은지라 정확한 맥락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부르주아 계급을 탄생시킨 두 혁명은, 소설과 문화의 탄생과 번성의 관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홉스봄 역시 이 점은 동일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와 계급의 관점에서 두 혁명은, 부르주아적 자본주의의 승리가 시작되면서 노동 빈민 계급이 출현하는 현대의 사회의 모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당대에도 오랜 교육과 남다른 재능, 기회를 필요로 하는 자유전문업(의사, 법률가, 교수)은 노동자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홉스봄은 재능만으로 출세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사업'이라고 한다. 과연그럴까.. 현대 사회든 19세기든 우리 뿐 아니라 서구 사회도 마찬가지로, 교육이 핵심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타자보다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다. 그 삶이  사회적 부를 이루는 성공이든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자유로움이든 간에. 교육란 명제는 복잡한 얼굴을 지녔다.

또 한편으로 이 시기는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였다. 어떤 사조든간에 깊이 들여다보면 그 정체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통감하게 된다. 한동안 낭만주의의 뿌리를 잡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만 결국 잡지 못했고, 낭만주의라는 것이 사실주의 시대로 넘어오면 진부하지만 고전주의가 만연했던 때, 고전주의 관습을 어기는 일련의 움직이다. 홉스봄이 언급한 낭만주의를 잠시 보면,

"이중혁명 시대의 가장 특징적인 생활 및 예술 양식이지만, 결코 유일한 양식은 아니었다. 낭만주의는 귀족의 문화나 중류계급의 문화를 지배했던 것도 아니며 게다가 노동빈민의 문화를 지배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므로....이데올로적 특징이 분명치 않은 경우인 음악에서 낭만주의를 가장 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낭만주의가 중류계급 문화에 들어오게 된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마도 대체로 부루주아 집안 여자들 사이에서 공상하는 일이 성해진 탓이었다. 자기들을 지루한 여가 속에 있게 해주는 돈벌이 잘하는 남자들의 능력을 보란 듯이 과시하는 것이 그녀들의 주요한 사회적 기능 중 하나였다. 애지중지 아낌을 받는 여자 노예라는 것이 그녀들의 이상적인 운명이었다."

그렇다고해서 부르주아 문화가 낭만주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전혀 일리가 없진 않지만 이렇게 단정적으로 낭만주의를 볼 수 만은 없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은 서구인들이 낭만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부정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낭만주의는 이상향au-dela에 대한 갈망으로 생각하고 몹시 혐오했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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