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3
홍성욱 지음 / 책세상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수전 헤이워드의 책을 읽다가 시선의 권력에 관한 대목을 만났다. 거기서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에 관해 말하고 있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쓰기 전에 먼저, 수전 헤이워드의 글쓰기 방식이 사뭇 유행적 흐름을 타고 있는데 정이 쬐금 떨어졌다. 뤽 베송을 분석하는 두껍지 않은 책에서 그녀는 모든 사회학적 이론을 언급하고 있다. 부르디외의 문화계급론,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와 시뮬라시옹, 로라 멀비의 에세이, 이제 벤담과 푸코의 파놉티콘까지...뭐 덕분에 파놉티콘 뿐 아니라 푸코의 <감시와 처벌>까지 들추어보긴 했지만 문제는, 수전 헤이워드가 이 방대한 개념들을 얄팍하게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유행에 민감한 글쓰기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책 얘기를 정리해 보면, 정보화 사회의 감옥을 벤담의 원형 감옥과 연결짓고 있는 저자의 순발력과 재치가 번뜩인다. 인간은 어떻게 보면 이 원형감옥에 적합한 존재가 아닌가도 싶다. 어떤 제도든 시작할 때, 선의에서 시작하지만 적응의 동물 인간은 곧 어떤 제도에든 익숙해진다. 그리고는 변종을 만들어 그 순기능에 반대되는 역기능을 사용하는 자들이 권력을 획득한다. 이런 권력의 메커니즘은 벤담의 시대든 현대든 변함없이 이어져온 것처럼 보이고, 단지 도구만 '발전' 또는 '개발'이란 이름으로 치환되어오는 듯해 절망감이 든다.

저자는, 파놉티콘 개념을 통해 넷Net상의 감시 기능 수행을 말하고 사생활privacy 강화를 주장하지만, 나는 이 프라이버시 강화 필요성에 회의적이다. 누구를 위한 프라이버시인지 모호하고,  프라이버시의 정의 또한 분명하지 않다.

얼마전, S-Oil 카드를 만들었다. 에스 오일 주유소를 그동안 한 번도 이용하지 않다가 무려 50원!이나 저렴한걸 발견하고 기름을 넣으면서 만들었다. 그리고 적립금이 있다는 삼성카드로 결제 했다. 이로써 나는 삼성화재에서 한 통의 전화와 에스 오일로부터 세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물론 텔레마켓팅을 위한 전화였고, 나는 바쁘다고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정보화 감옥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적립금을 위해 삼성카드를 사용하면서 카드사가 아닌! 화재사에 내 정보를 누출했고, 역시 에스 오일 주유소 적립금을 위해 에스 오일사와 연계된 회사에 내 정보를 나도 모르게 내 준 것이다.  소비사회에서 공짜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드러난다. 모든 적립금은 내 정보를 팔아먹은 대가다. 그러니 적립금을 포기하고 내 정보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적립금은 그대로 두고 내 정보를 지켜달라고 항의할 것인가. 이런 종류의 항의란 너무 귀찮은 일이고, 그렇다고 소비사회 이전의 삶을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대안은? 솔직히 말하자면, 악당들에게 도용되지만 않는다면 나는 내 정보의 일부를 팔아먹어도 신경쓰고 싶지않다. 귀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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