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지적 참견시점>이란 리얼리티 예능쇼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연예인과 로드 매니저의 관계를 밀착한 시선으로 담으면서 파생되는 유머를 생산하는 쇼다. 로드 매니저는 연예인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불편한 점이 없도록 종횡무진하면서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발레 valet 같은 역할을 한다. 현실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인데 각자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수직적 관계는 무너지고, 일시적이지만 수평적 관계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준다. 카메라 밖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도 적어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만이라도 갑과 을의 위치를 벗어버리고 상대의 일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훈훈한 휴머니즘을 선사한다. 각박한 도시에서, 을의 위치가 배려 받을 수 있고, 미디어의 힘이 더해져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 로드 매니저 일도 할 만한 일처럼 편집되기도 한다.
2. <그린 북>은 <전지적 참견시점>의 미국 영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상황은 1962년. 미국 남부에서는 극심한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공연을 위해 남부를 투어를 하는 천재 피아니스트와 로드 매니저의 8주간의 해프닝을 담는다. 피아니스트는 흑인이고, 로드 매니저는 백인. 엘리트 백인을 위해 연주 여행을 하지만 정작 천재 피아니스트는 연주하는 무대가 아니면 식당 출입도 제한받고, 호텔도 유색인 전용을 이용해야 한다. '그린 북'은 유색인을 위한 호텔 가이드북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고.
3. 영화는 적절하게 가벼우면서도 따뜻하게 전개되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마음이 훈훈해져서 가볍게 극장을 나올 수 있다.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 즉 흑인에도 속하지 못하고, 백인에도 속하지 못하면서 백인의 고급문화 도구로 사용되는 뮤지션의 고뇌를, 백인 로드 매니저의 떡 벌어진 어깨만큼 큰 배짱과 단순한 허풍이 어떻게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원칙주의자와 좋게 말하면 융통성 있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큰 갈등을 불러오지만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애정이 서로의 갈등 해결 방식을 타협해 간다. 자신의 방법 내지는 주장을 상대에 맞춰 조금씩 굽히면서 신뢰와 우정이 쌓인다. 갈등 없는 관계는 없다. 사람은 본래 자기중심적이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많은 훈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로 엮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모든 관계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4. 각자는 자신만의 색깔과 신념이 있고, 경험이 축적될수록 상대를 수용하기보다는 무시하고 배척하는 심리가 자라기 마련인데 이런 심리의 싹을 발견하고, 이따금씩 잘라낼 수 있으려면 단순함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차 안에서 치킨을 먹을 때, 포크와 나이프가 없어서 안 먹거나 포크와 나이프를 구해오라고 하기보다는 상대가 시키는 대로 손으로 들고 먹어보는 것.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접시 위에서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손으로 집어 들고 닭 다리를 뜯어도 맛은 똑같다는 걸 그렇게 먹어봐야 알 수 있으니까 이런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면 닥치고 나도 상대의 방법에 한번 맞춰봐야지, 다짐을 해 본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5. 인종차별 주제는 미국 영화에서 사랑 다음으로 무궁무진한 소재인데 참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미국 영화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이따금씩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