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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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소설이다. 작가는 언어를 무척 잘 다룬다. 실제로 비어와 속어가 난무하는 버니는 제쳐두고 소설집 표제인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보면, 형식적으로 성경을 차용해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렇다고 형식의 참신함이 그의 소설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소설 속 인물들은 대개 주변인이다. 눈에 띌것 없는, 아니 어쩌면 비루한 존재감 때문에 눈에 띄는 그런 인물들이다. 단순히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니라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들의 배경에는 항상 권력층 내지는 기득권이 존재한다. 이기호는 드러내놓고 제도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의 우스꽝스러움을 통해 권력의 허풍과 야만성을 풍자한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에서 순녀에게 감자 농사는 우주요, 삶의 원천이다. 자갈밭에 거름을 주고 애정을 주며 가꿔오던 중 군부대가 들어서서 그녀의 우주를 가로채려하자, 이런 말을 한다. "도대체 국가가 누구냐, 그렇게 신성한 것이 어찌 자주 피난을 가버리느냐, 멧돼지도 피난 한 번 안 갔다.." 일자무식인 순녀에게 반체제 발언은 생존본능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위기에 처한 현대 소시민이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문명이란 이름 하에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각종 정책들이 등장하고 따를 수 밖에 없는 소시민, 또는 이익집단 내에 있는 힘없는 구성원들이 하고 싶은 말과 일맥상통한다.

또 최순덕과 시봉은 어떤가? 순덕의 광신적 행보를 통해 소비사회에서 낙오자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해학적으로 접근한다. 순덕은 신의 응답을 받기 위해 바바리 맨이 필요하다. 바바리 맨은 무능함 때문에 회사와 집에서 당하는 무시를 견디기 위해 광신도 순덕이 필요하다. 순덕은, 아니 순덕의 맹신이 적어도 바바리 맨에게만은 위안이 될 수 있다. 생업을 팽개치고 전도에 모든 시간을 바치는 사람들을 이따금식 지하철에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바바리 맨의 고뇌가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버니> 역시 사창가 풍경을 묘사한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매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공급자만 비난을 받는 그런 세상이다.

이기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날카롭고 슬프지만 눈물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택한다. 웃으면서 세상을 뒤집어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즉 주류의 시각이 아닌 비주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권한다. 물론 불편하다. 세상을 비주류로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정작 본인은 주류라고 생각하면서 긍적적 마인드를 최고의 가치로 교육받은 사회에서 다른 목소리로 현실을 목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타인에 대한 배려에 있을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의 우주는 사소한 것이고, 그 사소한 것이 지켜질 때 그들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느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우주를 하찮게 여기고 없애며 우리의 우주 또한 누군가에게 하찮게 여겨져 빼앗기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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