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이탈리아의 그 로마인 줄 알고, 영화 보면서도 내내 왜 스페인어를 쓰지, 궁금했다. 너무 궁금해서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찾아봤더니 멕시코시티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고-.- 스펠링도 Rome 아니라 Roma. 아무튼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을 연상시키는 사실주의적 기법을 사용한 영화다.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카메라는 클레오란 가정부의 일상을 밀착해서 따라가면서 중산층 가정을 들여다본다. 계급을 뛰어넘는 여성 연대를 보여주는 영화라서 뭉클한데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계급을 뛰어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는 편이라 이 영화는 감독의 판타지로 읽히기도 한다. 클레오의 일은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다. 다행히 주인 부부는 갑질을 안 하는 품격 있는 사람들이다. 클레오가 계획 없는 임신을 하고, 남자친구는 임신 사실을 알고 행방을 감춰버리는데 클레오의 임신 사실과 출산을 지켜주는 건 주인집 여자들이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 침대를 사러 자신의 아이들의 가구를 샀던 가구점으로 하녀를 데려가는 주인이라니...하지만 배가 불러서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장면은 모두 생략되었으며 이런 미담들만이 카메라에는 담겼다.

클레오 개인의 급격한 환경 변화는 아마도 내전, 그리고 주인님 남편의 바람으로 혼자 남겨진 안주인의 심리 묘사가 함께 진행되는 이중 플롯이다. 쿠아론 감독은 내전의 혼돈과 안주인이 남편의 배신으로 겪는 혼란을 미니멀하지만 그 효과는 커다랗게 담는, 탁월한 묘사를 한다. 가령, 아기침대를 사러 갔을 때 경찰이 시위대를 쫓아서 가구점 안으로 들어와 쑥대밭을 만들면서 클레오의 양수가 터진다. 시각적 스펙터클을 심리적 스펙터클로 대체하는 장면인데 시위 장면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극적이다. 또 남편이 바람이 나 젊은 여자랑 살러 집을 나가자 그 집의 상징인 커다란 차(갤럭시)가 좁은 주차장을 들어올 때, 이리저리 박아버린다. 남편이 차를 애지중지해서 주차의 달인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과 아주 대조적이다. 남편에게 소중했던 것을 파괴하려는 욕구로 대체하는 장면이다.

역시나 눈물을 흘렸던 장면은, 바닷가 장면이다. 높은 파도에 아이들이 떠밀려 가면서 수영을 못 하는 클로에는 아이들을 구하러 파도를 넘어간다. 자신의 아이를 사산한 후였다. 차분하고 말이 없던 클로에는 햇빛을 받아 아름다운 파도를 헤치고 나와서 숨을 몰아쉬면서 안주인에게 말한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어요, 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이럴 때 여성으로서의 연대는 빛을 발한다. 안주인은 우리는 너를 사랑해. 클로에게 가족이 생겼고, 안주인은 남편은 가족에서 이제 빠졌지만 여전히 가족은 건재하다는 걸 아는 강인한 사람이다. 써 놓고 보면 흔한 이야기를 쿠아론 감독은 담담하게 일상을 잡아내면서 살아가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살아가는 일은 가까이서 보면 참 힘겹지만 토막 단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어떤 사건도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물론 마음에 상처의 흔적은 강하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처에는 새 살이 돋고, 희미해지는 날이 올테니 그때까지 잘 버티는 자가 장땡이다. 버티는 데는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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