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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0
니꼴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평점 :
희곡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무거움, 내지는 수용할 수 없는 상상력 부족이 있다. 이건 순전히 학부시절 수업 탓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라신느의 비극, 몰리에르의 희곡을 발췌해서 강독하고,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 장 꼭또의 희곡 등등을 읽었던 시간은 내 주리를 트는 시간이었다. 심오한 깊이의 희곡들을 견뎌내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고 철이 없었다. 소중한 수업 시간이 다시는 올 수 없다는 것을 그 때는 미처 몰랐다.
검찰관이 희곡인지 책을 받아보고서 알았다. 희곡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득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대략 난감했다. 그러나 고골이고 또 나는 이제 철이 없지도 않고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희곡을 읽을 수도 있을거란, 최면을 걸고 심호흡을 했다. 인물 설명을 읽고 역시 고골다움에 미소짓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 시골 마을에 검찰관이 오기로 되어있는데 마침 한 말단 관리인 흘레스따꼬프가 여행 중이었다. 시장을 비롯한 단체 장들이 그를 검찰관으로 오해하면서 빚어지는 해프닝이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인식의 한계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떤 한 공간이나 위치에 오래 있다보면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런 오류가 외부인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그 안에 속해 있을 때는 그 우스꽝스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분노하며 비난하기까지 한다.
정주하는 자, 멸망할 것이고 이동하는 자 흥할 지니. .대략 이런 자끄 아탈리의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동하는 노마드가 되는 것은 불편함을 감내하고, 욕심을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은 실행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관습에 갇힌 전형적인 정주형 인간형인 시장을 비롯한 등장 인물들. 그들은 바로 우리의 초상이다.
덧. 고골은 풍자적 인물을 창조하는 데는 재능을 지녔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긍적적 인물을 창조하는 데는 실패했다. <죽은 농노>의 속편들을 긍정적 시선으로 쓰려고 10년간 노력했지만 실패했단다. 번쩍이는 기지를 지닌 글을 써서 두 세기를 넘어 읽히고 있지만 고골 본인은 정작 자신의 인물에 만족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