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때 극장에서는 <체실 비치에서> 한 편 밖에 못 봤다. 극장에 가는 일도 체력을 몹시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라니..대신 집에서 누워서 <4월 이야기>, <사과>를 봤다. 책 좀 봐야지 했던 연휴는 수다로 점철되고, 매일 몇 시간씩 수다를 떨다보니 체력은 한없이 방전되고, 내 체력 방전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연휴는 끝이 났다. 친구들을 많이 만나기는 했는데 몹시 허무한 연휴라고 할 수 있겠다.

<체실 비치에서>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안 읽어봤는데 영화 <어톤먼트>도 그렇고, 감정 전달력이 약하다. 남녀가 서로 만나서 끌리는데 별 이유가 없고, 헤어지는데도, 어쩌면 별 이유가 없을 수 있다. 나는 아는 상대방의 단점을, 정작 상대는 단점으로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인지조차 못할 때가 많다. 체실 비치에서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결혼식을 올리고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간 첫날 헤어진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여자의 집안은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하는 신흥 중산층에 속하고, 남자의 집안은 그림에 미쳐있고, 자연과 교감하겠다고 나체로 집마당을 돌아다니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존재는 어머니이므로 남자와 뗄 수 없는 관계였으나 여자를 만나면서 어머니와 남자는 동일체라는 강박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주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포용한다. 어색한 분위기마저도 마법처럼 친화력을 발휘한다. 남자의 집을 찾아 기차역에서 숲을 통해 걷는 기나긴 길도 조금만 가면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한다. 남자 역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여자의 아버지 회사에서 맞지 않은 일을 하기로 한다. 여자를 위해서. 서로의 미래를 서로를 위해 희생하려는 굳건한 믿음이 있던 커플이 아름다운 체실 비치에서 헤어지고 만다. 남녀의 사랑이라는 건 얇은 유리같아서 언제든 쉽게 깨질 수 있는 걸 보여준다.

그 이유는 첫날밤, 여자가 섹스에 대한 혐오감을 참지 못해서고 남자는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남자는 분노로 심장이 터질듯해서 말도 안 되는 여자의 제안에 더욱더 화를 낸다. 아름다운 비치에서...싸우는 장면마저 아름답게 담긴 화면, 영화 내내 흐르는 바흐의 파르티타 곡.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너무 젊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원래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 못하도록 태어난 종인가...아무튼 이 아름다운 커플이 깨지는 이야기인데 이언 매큐언 소설도 안 읽고, 영화도 두 편 밖에 안 봐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형식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울림이 별로 없다. 플래시백으로 두 사람의 가정 환경과 학교에서 성격 등이 드러나는 방법도 구태의연해서 좀 답답하고.

특히 결말은 더더욱 마음에 안 든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여자는 첼리스트랑 결혼해서 자식과 손주들까지 낳고 바이올리니스트로 연주를 하는데 그곳에서 남자는 회환의 눈물을 흘린다. 청년과 장년의 시간을 압축해서 넣은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오랜 시간동안 두 사람의 감정을 잇는 그 무언가를 관객이 느끼기에는, 너무 젊다. 청년기의 사랑이 노년기에 돌아보면 아릿할 수 있을까. 궁금하네. 감정도 근육이 생기고, 상처난 가슴에는 새로운 살도 솟는다. 한때 찢어진 가슴은 이어지고 살다보면 흔적은 남지만 통증은 바래고 아팠던 기억만 남아있는 거 아닌가. 아무튼 영화는 별로였다는 말이고, 이언 매큐언의 소설에는 전혀 손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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