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10
롤프 귄터 레너 지음, 정재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이런 그림 읽어주는 책은 그만 읽고 싶단 생각이 든다. 작가의 기록이 아닌 이상 그림 해설서에 가깝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림을 자꾸 해석에 맞추어 보려는 습성이 생긴다. 그러니까 학습으로 인한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더구나 이 책을 쓴 저자는 다분히 프로이트적 관점으로 그림을 해석하는 데 상당히 거슬린다. 그림 속 여성과 남성의 이미지, 특히 여성의 이미지를 말이다.

호퍼의 그림은 보면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이유를 호퍼가 한 말에서 찾았다.

"어쩌면 나에겐 인간적 면모가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햇빛을 그리더라도 집의 벽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그리고 싶었다."라는 바로 이말이 열쇠다. 호퍼의 그림들은 금속성 차가움이 느껴진다. 이런 차가움이 배인 영화나 글, 사진을 나는 좋아한다. 그러나 그림은 보면서는 불만이 생긴다. 왜 저렇게 차가운거야. 따뜻한 온기가 있는 게 좋아 하면서 투덜거리고 있다. 내가 궁극적으로 묘사하고 싶어하는 것을 그린 그림을 보고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통증을 느낀다. 마치 까칠한 표면에 살갗이 닿은 것처럼 말이다.

그의 그림은 사람들 보다는 풍경이 주를 이루고, 풍경 중에서도 실내가 주를 이룬다. 틀에 박힌 삶 속에서 트인 외부를 응시하지만 그 외부 세계는 늘 닫혀 있고 미지의 세계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창들이 그러한 이루지 못하는 갈망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창을 뛰어 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의지다. 그러니까 칼 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는 말이다. 창과 벽이 만들어주는 익숙한 실내에 있을지 또는 문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갈지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다.

호퍼는 평이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이런 이력과 그림 속에서 풍기는 이미지들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호퍼는 익숙한 세계에 머물기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무얼 선택할 것인가. 많이 흔들리는 요즘이다.

 

사족.. 안타까운 점. 2004년에 뉴욕에 갔을 때 호퍼를 몰랐다. 호퍼 그림들이 있는 휘트니 미술관을 방문할 리 없었다.ㅠ.ㅠ 하루에 한 번은 꼭 지나게 되는 메디슨 가에 있었건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날 두고 하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