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영화 재미없다는 네티즌들의 반응 때문에 안 볼 뻔했는데 친구가 보자고 해서 봤다. 기대를 하나도 안 하고 봐서 그런지 무척 재미있었다. 딸 찾는 이야기라 뻔하겠지 했는데 안 뻔하다! 추리물로는 자극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SNS의 속성을 스크린을 통해 잘 묘사했을 뿐 아니라 인간관계 왜곡된 시선도 잘 담았다. 특히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대한 입장차이도 잘 담았다. 그래서 무척 흥미로운 텍스트다.

2.  딸의 실종으로 아빠는 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딸이 피아노만 보면 죽은 엄마 생각이 나서  6개월 전에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딸이 없어진 후에 알게 된다. 딸과 아빠의 관계여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일은, 지극히 경계해야한다. 내가 어떤 이에 대해 안다는 가정은 단지 그가 내게 보여준 단면만을 아는 것이라는 걸을 인정해야 한다. 이걸 인정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온전히 한 사람을 이해하고 아는 건 불가능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그렇지만 가까울수록 안다는 착각에 빠져서 나중에 자신이 모르는 모습을 발견할 때, 우리는 상대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왜 그랬는지 추궁하고,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니, 하고 반문한다. 아빠 역시 딸의 물리적 실종으로 딸과 자신과의 사이에 씽크홀sinkhole같은 커다란 구멍을 발견한다.

첫 반응은 충격이고 딸을 찾아야하기에 딸에 대해 더 서치를 해나가면서 딸이 피아노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 괴로워서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었고, 친구가 없이 늘 혼자 점심을 먹고, 어느 호숫가 혼자 앉아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걸 알게 된다. 16세가 되어가는 딸은 세상과 점차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는 걸 딸이 없어진 후에나 알게 된다. 애착 대상이 부재 후에나 성찰적 태도를 지니게 되는 건, 안타깝게도 사람의 속성이 아닐까.

딸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알게 되는 과정이 바로 SNS 서치를 통해서다. 딸의 각종 SNS 계정, 페이스북부터 텀블러, 인스타그램, 유캐스에 로그인하자 딸의 진짜 세계가 쭉 펼쳐진다. 현실 세계보다 더 진지하고 진짜 딸을 볼 수 있는 넷의 세계다. 영화를 보면서 무서웠다. 누군가 내 블로그나 SNS 계정을 추적하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나를 특정 목적으로 추적하는 누군가가 있을리 없을테지만(그러리라 믿고 싶은데 이따금씩 방문자 USR를 들여다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수상한(?) 기록을 발견하고 잠시 불안하긴 하다)

가상세계는 자신에 대한 편집이 가능해서 거짓을 꾸며내기 좋은 수단이기도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진짜 자신을 노출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해서 받아들이는 일은 상대의 몫으로 남겨진다.아빠는 딸의 가상세계에서 진실을 본다.

3. SNS의 속성이 영화에서는 딸의 행방을 추적하는데 쓰여서 긍정적으로 기능하는 편이지만 한없이 가볍고 속이기 쉬운 속성도 집단 심리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2백 명이 넘는 친구들에게 전화했을 때, 모두 딸과 안 친하고 잘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던 이들이 미디어에 공개수사로 노출되면서 SNS에는 딸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의 피드가 올라오고 댓글과 감정이모티콘들이 쌓인다. 사람이 사라져도 손가락으로 슬퍼요를 누르고, 보고싶어, 하는 친절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데 여기에 담긴 진심의 깊이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슬퍼요, 보고싶어, 하는 댓글을 달지 않으면 안 걱정하는걸까? 현실세계에서 무관심이 넷상의 군중심리로 표현되는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4. 담당 수사관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다. 실종된 딸과 아빠의 관계와 대립항으로 볼 수 있다. 엄마는 아들에 대해 너무 잘 안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아이가 사회에 약간 부적응한 예민한 성격이라는 단정이 지나친 모성을 발휘하게 한다. 엄마의 적극적 개입이 없었더라면 아들은 어땠을까? 누군가를 잘 안다는 단정은, 아주아주 위험하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5. 영화는 해피엔딩이라 나오는 마음 가볍게 극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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