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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막 ㅣ 마카롱 에디션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모리악이 모리아크로 표기법이 바뀐 걸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모리아크 소설. 이십대 초반에 나를 괴롭히던(?) 작가였는데 지금 다시 읽다 보니 너무나 당연하다. 모리아크의 작품에 공감하는 이십대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까? 인생의 쓴 맛을 본 후 읽는다면 모리아크의 작품들은 인간의 본성과 윤리 사이에서 개인이 취하는 입장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금욕적 입장을 취하고, 죽음을 통한 구원을 추구하는 작가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은 내게는 아주 매혹적이다. 어린 시절, 내가 끌렸던 이유는 생각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중성이었다.
<사랑의 사막>은 개인의 이중성을 넘어서 가족 내에서 역할과 갈등을 일으키는 권력 관계를 묘사하는데 한국 사회의 고부 사이와 닮아있기도 하다. 가족 살림을 하는 하녀를 누가, 어떻게 사용할 지에 대한 의견 차이 등등과 식탁에서 벌어지는 가족간의 오고가는 대화 속에 사위에 대한 아버지의 적의감, 아버지와 아들과의 대립관계도 흥미롭니다. 성인이 함께 모여 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성인이란 자신의 주관대로 세상을 살아갈 것으로 기대되고 또 그렇게 하기 때문에 성인 자식과 부모 사이에는 세대차이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게 되는 갈등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한 가족이라는, 한 배를 탔다는 의식 때문에, 둘은 관계의 균형을 위협하는 것을 꺼렸다. 인생이라는 갤리선에 함께 승선한 노예로서, 자기들이 타고 있는 배에 화재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생존 본능일까? 그리하여 이제 식탁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70)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어서 사람들로 늘 둘러싸여 있지만 혼자 있을 때 개인의 본성이 가장 잘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혼자 남겨지자마자 미친 사람이 된다. 우리 자신에 의한, 우리 자신에 대한 통제는, 타인이 우리에게 행사하는 통제가 있을 때에만 작동한다."(62) 우리의 미친(?) 본성을 다스리는 건 결국 내가 아니라 타인일 수 있겠다.
<사랑의 사막>은 쿠레주 가(家)를 다루는 가족 소설이지만 그 중심에는 아버지쿠레주 박사와 아들 레몽 쿠레주가 한 여자 마리아 크로스를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의사인 아버지는 환자와 연구에만 몰두하는 줄 알려져 있지만 마음 속에 마리아란 커다란 불을 품고 살아가고, 아들 레몽은 소년기에 마리아를 보고 반하면서 소년이 아버지를 떠나 청년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나는 청년의 마음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에 더 감정이 이입되었다. 혼자 마리아를 사랑하고 단념하는 문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모르핀 주사를 맞듯이, 그는 일상의 근심거리들을 자신에게 투약했다."(94) 많은 사람들이 실연을 하고 택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모리아크는 우아한 작가라 아들과 아버지가 연적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혀지는 걸 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상상하면서 고통을 받는, 사랑의 속성인 질투를 묘사한다.
"이 고독한 사랑은 왜 이다지도 매혹적인가? 팽팽하던 긴장 속에서 상대가 사라지고 나자 그 사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자기의 정염의 맹렬함뿐이었다. (...) 때로 이런 고독한 정열이 정상적인 사랑의 교류보다 더 강력하고 매혹적일 수 있음을, 마리아는 배우게 되었다."(152)
세 인물 모두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자신의 정염을 더 사랑한 게 아닐까. 모리아크는 인간들간의 사랑을 좀 가엾게 여기고 신의 구원을 통한 더 큰 사랑을 믿는 작가라 이렇게 표현했지만 사랑의 속성은 그 누구보다 예리하게 포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