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보글을 보고는 별로 안 보고 싶었는데 상영시간이 맞아서 본 영화. 홍보글은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는 43살의 중년 여자가 미국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서 미국으로 사랑을 찾아 떠나는 로맨틱 코디디처럼 묘사했다.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단순한 사랑을 찾아서 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본 사회, 나아가 현대 사회의 외로움과 인간적 윤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당히 주제가 무겁다.

2. 첫장면이 퇴근길, 사람으로 가득찬 지하철역. 인파 속에서 세츠코의 귀에 잘 있었어요,라는 속삭임을 남기고 한 남자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에 몸을 날린다. 마치 이런 일이 빈번한 것처럼 영화 중간에도 묘사된다. 누군가가 지하철에 뛰어들어 열차 운행이 중지되고 있다고. 이런 말을 주고 받고,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이야기이다. 세츠코의 회사에서  아마도 강제 퇴직할 수 밖에 없는 중년 여인의 송별회에서 세츠코는 사람들이 그녀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려준다. 나중에 세츠코가 사직을 권고 당할 때, 세츠코가 사무실 문을 닫고 나가자 모두 즐거운 소리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슬픔이나 아픔에 공감을 보여주지 않는 사회에 익숙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아무하고도 마음을 터놓지 않고 늙어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러다가 조카의 소개로 독특한 수업방식을 지닌 영어 수업에 등록하는 세츠코. 입술을 움직이이 않고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데 익숙한 세츠코는 루시란 영어 이름을 갖게 되고 입을 크게 벌려 상대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 연습을 하게 된다. 수업 시간 전에는 허그를 워밍업으로 하고. 허그는 상징적이면서도 그 힘이 엄청나다. 세츠코/루시가 자신을 루시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 존을 따라 미국에 간거는 맞지만 존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 즉 '허그'를 찾아나선 것이다. 허그에서 오는 사람의 온기를 루시는 갈망하고 있었다. 사람의 체온을 몰랐을 때는 자신이 결핍된 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존을 통해 사람의 온기가 결여되고 비로소 갈망하기 시작한다.

세츠코/루시는 왜 히키코모리가 되었나. 과거의 연인을 친언니가 가로채서 결혼했다. 언니의 딸 조카딸 미카 덕에 존을 알게 되었고, 미카는 존과 연인이고 그런 존을 좋아한다고 믿게 되고, 미카는 그 사실을 알고 자살을 하고. 한국일일드라마로 일년은 족히 풀어갈 이야기가 두 시간도 채 안되는 상영시간에 다 들어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덕보다는 개인의 욕망이 우선하는 가족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건 최소한의 도리이고, 예의인데...라고 쓰면서 급반성을.

3. 낯선 이와의 허그 속에서 세츠코/루시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찾기 힘든 인간적 예의를 발견했기 때문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4. 영화를 다시 생각하니 우울하네. 고집 내지는 아집이 늘어가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는 요즘인데...공감 능력은 나이들수록 떨어지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심드렁하게 받아들이고. 단 하나 긍정적인 점은, 갑자기 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지는 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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