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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또예프스까야 지음, 최호정 옮김 / 그린비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위대한 작가의 아내가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가 쓴 결혼 생활 에피소드들이 감칠맛나게 쓰여있다. 이 책이 거장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적인 면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지만 700쪽에 달하는 책을 읽어가면서 안나란 여인의 성품과 이 책 자체가 갖고 있는 문학성에 매료되었다.
안나 자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성에 미치지 못하는 고등교육을 받은 그저 평범한 여인이라고 하지만 그녀가 쓴 책에서 그녀의 예리한 지성을 느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연구가들에게는 필독서라는 이 책을 통해 안나란 한 여인의 문학적 감성과 재능이 숨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이 책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인상기>를 읽고 였다. 이 책은 격정적이고 도박에 빠진 도스토예프스키의 일기와 편지 모음집이다. 도스토예프의 사적인 글에서 항상 드러나는 격정은 안나를 성녀처럼 생각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안나의 입장에 본 안나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많이 다르다.
스물 다섯 살 연상의 남편과 신혼시절, 그녀 많은 시집 식구들을 미워했고 고통스러워했다. 딸린 식솔들로부터 도망치듯 바덴바덴으로 여행을 와서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4년 동안 외국에서 생활을 한다. 이 시기를 안나는 가장 좋안 던 시절 중 하나라고 회상하고 있는다. 박물관과 미술관, 도스토예프스키와의 대화 등에 대한 기쁨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아 지적 호기심이 매우 왕성한 여인인 것 같다. 레오니드 치프킨의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은 이 시기의 생활을 소재로 쓴 소설이기도 하다.
또한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벽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의 불같은 기질을 잘 알고 있어서 창작의욕을 북돋아주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극심한 가난과 빚 속에서도 그녀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도박으로 남편의 기분이 전환되어 생산적 감정으로 바뀔 수 있다면 그녀는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주었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격정적이고 참을성 없고 성격이 급한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그녀의 지혜로움이 두드러진다. 물론 그녀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이란 것도 전혀 무시할 수 없는 것도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창작을 돕는 것에 커다란 보람을 느끼고, 물심양면으로 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일은, 스스로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결코 지속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사랑에 질투가 나면서도 존경을 하게 된다. 사랑이란 서로 노력해야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안나는 세기를 앞서간 미래 지향적 여인이다. 가정을 경영할 줄 알고, 사랑을 경영할 줄 아는. 아, 이제 주변은 그만 배회하고 도스토예프스키를 다시 읽자.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