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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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책은 민음사 판이 아니다. 청년사에서 나온 판으로 알라딘에는 없다. 알라딘에 없는 책은 리뷰를 쓸 수 없는 대략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는군. 책 리뷰가 검색을 하다 스치는 네티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기억을 보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러므로 임의로 청년사 책을 읽고 민음사 책에 리뷰를 기록해둔다.

고골리를 처음 읽었을 때는 고등학교 때였다.  고등학교 때를 떠올리면 나는 독서의 즐거움에 상당히 빠져있었다. 지금과 달리 많이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했던 터라 책은 친구같은 역할을 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서 다음에 빌릴 책을 찜해두고 빌린 책을 빨리 읽어나갔다. 다음 책을 빌리기 위해서. 점심시간에도 읽고,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고 심지어 수능과 관계 없는 수업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읽은 책을 모두 이해한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내가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책은 분명히 많은 역할을 했다.

고골리의 <코>와 <외투>를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고, 다시 읽으면서 비교적 선명하게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일차적 즐거움. 그리고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러시아 문학에 끌리는 내 성향은 변함이 없다는 것.

사실 고골리의 소설을 다시 집어든 것은 며칠 전 읽은 <마술적 사실주의> 덕분이다. 고골의 작품들, 카프카의 <변신>등도 마술적 사실주의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정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와 일맥 상통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계급의 문제는 어느 사회에나 있고, 계급의 차이로 인한 문제를 묘사하는 작품들도 많다.

그 중 고골리가 매력적인 이유는, 계급의 문제를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기술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소박한 세계관과 순진함이 짓밟히고 사라져가는 과정이 처연하다. 마술적 요소들 때문에 익살스러우면서도 슬프다. 서구의 모더니즘이 부루주아의 실상을 직접적으로 폭로한다면, 고골의 소설은 프롤레타리아를 통해 간접적으로 부르주아를 비판한다. 물론 이 점은 사회 분위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글자를 옮겨 적는 정서가 일인 구등관은 자신의 일에서 삶의 낙을 발견할 줄 아는 소박한 인물이다. 그는 성실함의 대명사다. 그런 그에게 재난이 닥친다. 외투가 낡아서 새 외투를 장만해야하는 것. 최소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그에게 일대의 난관이고 어렵게 장만한 외투를 둘러싸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새외투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한 인간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 내 기준으로, 또는 일반적 기준으로 타인의 사는 방식을 평가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종종 이 사실을 잊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코>는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풍자한다. 코가 오등관처럼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소문으로 사람들은 술렁인다. 살아가면서 실체없는 소문에 쓸려다니는 일을 없도록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횟수를 줄일 수 있도록 경계를 할 수 있으리라. 

고골리를 읽으며 잠시 내 십대의 편린을 떠올리는 흐믓한 시간이었다. 아울러 영감이 샘 솟는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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