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식 SF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기술 선생님인 지킬 여사는 아이들의 놀림거리였는데 어느 날, 번개를 맞고 몸에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초능력을 지니게 되고 무기력한 성격을 떨치고 능동적으로 변해서 카리스마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헐리우드 영화라면 초능력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쓸어버리고, 나아가 거시적으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영웅으로 대접받는 줄거리로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이다. 지킬 여사가 갖게 된 초능력은, 자신을 위해서 사용한다. 늘 반 친구들의 무시를 받는 말릭이란 학생에게 몹시 감정을 이입한 지킬 여사는, 말릭을 친구들 무리에 섞이도록 선택해서 교육을 시킨다. 다리가 불편한 말릭을 또래들은 배척하지만 말릭은 또래의 막말을 듣고, 지킬 여사한테 막말을 한다. 지킬 여사의 분노는 초능력을 통해 발현한다. 정의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 대한 억압에 대한 일종의 복수를 위해 초능력이 발휘된다. 너무나 인간적인 초능력 사용이다.

2. 이타심은 이기심에 기반을 두기에 전적인 이타심은 가식일 뿐이다.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칭찬을 받는다면 결국 그 칭찬을 얻고 자존감 회복을 위한 행동일 뿐이다. 진화생물학에서 이타심을 진화의 요소로 꼽는 이론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영화는 초능력자를 영웅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초능력을 둘러싼 주변의 시선을 다룬다. 가장 가까운 남편, 이웃은 낯설어 하고, 좌절한다. 그녀의 초능력을 모르는 교육제도는 갑작스럽게 눈에 띄는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지킬 여사 본인은 정작 하이드적 능력에 대해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는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 확보를 위해 적절히 사용하고,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과도하게 사용한다. 약자에 대한 약자의 비웃음에는 가차없는 분노를 표현한다.

3. 지킬 여사는 자신의 초능력 남용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느낀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상호작용에 대한 짧지 않은 역설이다. 상호작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걸 말한다. 예를 들면, 한 개체의 성장에 유전자와 환경의 함수관계는 독립적으로 계산될 수 없고, 가설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힘에 미치는 전기와 중력의 관계는 상호적이지 않다. 둘 사이의 관계는 그 어떤 함수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초능력은 그녀의 분노 혹은 약자 위치와 상호작용해서 남용이 일어났다. 분노가 없었다면 초능력과 지킬 여사는 전기와 중력의 관계와 같았을 지도 모른다.

4. 인간사에서 모든 상황에서 각각의 요소는 상호작용적일지도 모른다. 특히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내가 기분이 저조한 건 상황 탓이기도 하고, 상황 탓에 기분이 저조할 수도 있다. 기분과 상황은 독립된 요소가 아니다. 기분과 상황은 유전자와 환경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5. 영화를 보면서 사실 딴 생각을 엄청했다. 영화 내내 괴로웠고, 영화가 끝나고도 강도는 좀 약해졌지만 괴로웠다. 요즘은 어둠 속에서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으면 잊고 있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나와 상영시간 내내 괴롭힌다. 이 증상을 없애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데 효과는 썩 좋진 않다. 잠재의식에 매복해 있는 상념들이 어둠 속에서 나와 춤을 추는데 무기력해져서 이리저리 움직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또 세우는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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