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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ㅣ 시공아트 12
프랭크 휘트포드 지음, 김미정 옮김 / 시공사 / 1999년 9월
평점 :
일종의 위인전에 속하는 책이건, 영화건, 그저 감탄만 하기엔 내가 너무 나이들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누군가에 대해서 애정을 갖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내면세계가 궁금하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야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애기를 나누면서 습관과 버릇 등을 체험한다. 죽은 사람, 또는 너무 성공해서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종종 그와 관련된 책을 찾는다. 이런 경우, 섭외 1순위는 문학성에 관계 없이 잡문이라도 그 인물이 쓴 책이다. 다소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역시 그 사람의 내면세계의 일부인 것이다.
그 인물이 쓴 책이 없을 경우에는 아주 난감한 상태에 처한다. 제 3자가 쓴 책은 자료와 정보는 더 많을 지 모르지만 저자를 통해 주인공을 바라보고, 또 다시 내가 그 주인공을 바라보는 삼중창을 가져야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내면세계와는 정작 거리가 멀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프랭크 화이트포드를 통해 바라 본 에곤 실레는 더 궁금하다. 저자에 따르면, 실레는 이중성을 갖고 있었다. 나는 곧 프랑스와 트뤼포를 떠올렸다. 실제 생활에서는 여자를 좋아해서,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성욕이 왕성해서 매독에 걸려 살았던 그다. 그런데 자신의 작품에서 그린 사랑은 순수하고, 특히 육체적 순결을 중요시 한다. 또 어렸을 때, 극심한 가난을 겪어서인지 부를 동반한 성공에 용의주도하게 다가갔었다.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실레 역시 후원자들이 많았고, 자신이 밝혔던 대로 가난 속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이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고통으로 일그러진 자화상 및 초상화의 대가로 이끈 구심점이 아닐까. 당시 부르주아지의 후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그는 거부할 수 없었고, 육체적 안락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부르주아지의 허영에 깊은 염증을 느낀다. 이런 분열이 그의 재능을 통해 구상화되어 그림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난 내 느낌이다. 지나치게 유물론적 관점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결핍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불안을 낳는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