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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있는 풍경 - 한 스웨덴 화가의 집과 가족 이야기
칼 라손 그림, 이현주 엮음 / 뜰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그림을 그린 화가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인 칼 라손과 같은 삶을 원했다. 그것이 최상의 삶이라고 여겨왔다. 노동과 놀이가, 일과 가정이 분리되지 않는 삶. 어쩌면 산업혁명 이전에나 마지막 가능성을 가졌음직한 그러한 삶을 아직까지도 꿈꾼다. 내가 태어날 아기를 위해 손수 인형을 만들고 남편과의 단란한 주말을 포기하면서 DIY 공방에 등록해 준 것은 그러한 바람의 표현이며 일종의 시험대를 가져보기 위해서였다.
서정적이고 동화적이고 따뜻하고 섬세한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누렸던 삶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며 그 내면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버지가 그린 가족의 일상사는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된다. 가족을 둘러싼 자기 자신의 생활에의 온전한 사랑과 관심만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아버지는 벽을 칠하고 가구를 만들어, 그리고 어머니는 아이들 옷과 커튼을 짜서 집이란 공간을 그들만의 것으로 가꾸어 나간다. 칼 라손의 그림에서 공간으로서의 집은 곧 가족의 삶이자 그의 삶 전체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들의 삶이 부러워진다. 커다랗고 따뜻한 원 하나를 보는 듯 하다. 그 원은 지금 우리네의 파편화되고 분리된 삶과 대조된다. 가정과 직장이 철저히 구분되고 구분될 것을 종용받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찌할 도리 없이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다 주말에야 겨우 남들이 다 하는 방식으로 잠깐 숨을 돌리는 삶 말이다.
하지만 그의 삶이 무한히 동경의 대상이 되는 한 켠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공허함 역시 지울 수 없다. 칼 라손의 가족들에게는 그들 삶의 둘레를 만들어주는 다른 노동력이 필요했다. 물론 그들 가족은 일꾼들을 가족처럼 대한 듯 하고 그들의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마을 사람 모두를 위한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 누렸던 안온한 삶은 그들의 방패막이 덕분에 가능했고 그에 대한 약간의 인간적인 대가를 지원해주었을 뿐인 듯 보인다. 가족들이 따뜻한 부엌과 난롯가에서 모여앉아 행복한 시간을 가질 때 그들 가까운 곳 어디에선가는 분명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때 그들의 안온한 삶이 단지 아름다워보이지 만은 않는 것은 과연 지나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