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노끼오의 모험 1 창비아동문고 164
까를로 꼴로디 지음 / 창비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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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번역이 잘 된 완역본으로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잘 아는 듯이 느껴져 외면했으나 정작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새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제페트 할아버지의 말을 안 듣는 삐노끼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삐노끼오, 상어 뱃속에 들어갔다가 친구 물고기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삐노끼오...삐노끼오의 단편적인 모습이 원작에서는 살이 붙고 피가 도는 생생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어른 말을 안 듣고, 놀기 좋아하고, 학교 가기 싫어하고, 거짓말하고,  비겁하고, 멍청하고, 계속 바보같은 실수만 저지르는 삐노끼오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 비추듯 본다. 그러나 여러가지 숱한 난관들을 거쳐 결국 착한 아이가 되는 결말에서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완성되고 있음에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180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이 작품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래서인지 교훈적인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도 의외로 많고 교훈의 내용도 현대와는 좀 다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공부할 것뿐 아니라 '일할 것'까지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이탈리아를 철저한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여러 사건이나 인물의 설정에서 성서의 내용을 떠올릴만도 하다. 늘 조건없는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 제페트와 삐노끼오의 관계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신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상어에게 잡혔다 살아나오는 사건은 요나의 이야기를, 금화를 땅에 묻고 금화나무가 열리길 바라는 모습에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백여년이 넘는 오랜기간 동안 각국의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머리 속으로만 이해할 뿐 나도 재미있게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하겠다. 매번 반복되는 삐노끼오의 일탈과 돌아옴은 중반 이후로 갈수록 지루하고 때론 짜증나고, 사건은 유치하고 뻔해 보인다. 곳곳에 숨어있는 위트가 보석처럼 돋보이긴 하지만 작품 전반을 꾸준히 흥미있게 읽어내기에는 너무 싱겁다. 아이들의 마음에서 이미 멀고 아직 그 마음을 잘 알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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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0-05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이들의 마음에서 멀어진 탓일까요? 그때 그 동화들의 '티'가 자꾸 보이니 말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