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밀키웨이 > 앨리스의 영원한 기사, 루이스 캐럴



사진출처http://libweb2.princeton.edu/rbsc2/portfolio/lcl/fi/00000004.htm

 

불후의 명작 앨리스 이야기를 탄생시킨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 Charles Lutwidge Dodgson).

그는 우리에게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이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루이스 캐롤’이라는 이름은 1856년에 〈코믹 타임즈〉라는 잡지에 작품을 게재하면서 그 편집자와 상의하여 지은 필명이다.

캐롤은 1832년 1월 27일 체셔(Cheshire)지방 데어스베리(Daresbury)의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말장난, 체스 게임, 인형극 등에 관심이 많아서 집안의 많은 형제들과 잡지를 만들거나 연극을 하며 노는 것을 즐겼다. 캐롤은 리치몬드에서 럭비학교를 다녔으며 제임스 테이트 선생의 영향으로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1850년 옥스포드대학 수학부에 입학해서 수학과 논리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 와중에도 그는 시를 쓰고 소설을 쓰기도 하고 그림과 사진에도 재능을 발휘했다. 1854년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이듬해 바로 그 대학의 강사로 취임해 강의를 맡았다.


앨리스와 운명적인 만남


1855년부터 1881년까지 옥스포드대학 수학부의 교수로 재직한 캐롤에게 1855년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새로운 학장으로 핸리 리들(Henry Liddell)이 부임했다. 리들에게는 한 명의 아들과 세 딸, 케롯, 앨리스, 에디스가 있었다.
캐롤은 그 아이들을 무척 사랑했다. 아이들과 캐롤의 우정이 깊어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그림이 들어있는 수 천 통의 편지를 아이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사진기로 아이들 사진 찍기를 즐겼다. 사진촬영 중간중간 캐롤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이들은 흥미로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캐롤은 주로 재미있었던 전래동화를 섞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이야기들은 언제나 꿈과 환상적인 희망의 노래들로 가득했다.

한 번은 리델부부가 외국으로 겨울 휴가를 떠나면서 여성 가정교사와 아이들만 남게되었는데 캐롤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1862년 여름 몇 달 동안은 아이들과 템즈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보낸적이 있었다. 뱃놀이를 할 때면 캐롤은 그의 친구 덕워드와 함께했다.
캐롤은 그 당시를 이렇게 일기에 쓰고 있다.
‘덕워드와 나는 세 명의 리델가족 소녀들과 구스토우까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여행을 했다. 우리는 강둑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다가 그만 강의에 늦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9시 전에 기숙사로 데려다 주었다.’
특히 세 자매 중 앨리스 리델은 캐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앨리스는 캐롤의 이야기를 대단히 좋아했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경청을 했다. 캐롤은 천성적으로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에 기뻐하고 감동해주는 앨리스야말로 더 없이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앨리스 이야기의 탄생

캐롤은 아이들에게 앨리스 이야기를 들려준 시기를 1862년 7월 4일로 기록하고 있다. 8월에도 보트여행을 하면서 리델아이들에게 앨리스 이야기를 해주었다.
캐롤은 이야기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글로 써서 앨리스 이야기 책을 만들기 시작해 이듬해 2월 ‘앨리스의 지하세계 탐험’이라는 이야기 책을 만들었다. 처음엔 자신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했지만 출판사 측의 요구로 ‘펀치’지의 카투니스트로 유명한 존 테니엘에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맡기게 되었다.
그가 앨리스 이야기를 정식 출판하게 된 이유는 템즈강을 따라 뱃놀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앨리스가 캐롤에게 한 말 때문이다.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만들어 주신다면 정말 멋질거예요!”
캐롤은 앨리스의 이 한마디로 꿈과 희망을 담은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 결심을 하게된 것이다.

그렇게해서 탄생된 그의 첫 작품이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iand)’(1865년)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앨리스의 지하세계 모험(Alice’s Adventures Under Ground)’이었다. 그는 필명을 사용해 ‘루이스 캐롤’과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동일인임을 가까운 지인들도 모르게했다.
캐롤은 첫 작품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186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출판되기를 희망했지만 테니엘이 그림을 마무리하지 못해 이듬해 출판하게 되었다. 첫 해 2천부를 발행했고 캐롤은 그 중 몇 부를 고급양장표지로 만들어 리델 아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달 안돼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한 테니엘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출판하기를 요구했다. 캐롤도 이를 승낙해 신 판을 출간했고 5천부가 판매되었다.


리델 아이들과 아쉬운 이별

리델부인은 책이 출판된 후 아이들과 캐롤의 관계에 신경을 쓰면서 아이들이 캐롤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캐롤의 일기에도 1863년 7월부터 12월까지는 리델아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후부터 캐롤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못했고 그들의 우정도 소원해졌다.

그후 세월이 흘러 어린 소녀였던 앨리스도 숙녀가 되었고 캐롤과의 만남도 자연 멀어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맑은 모습의 앨리스는 그에게 두 번째 작품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1871년)를 창작할 힘을 주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말을 탄 하얀기사는 다름아닌 캐롤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한 존 테니엘에게 너무 나이들어 보이지 않게 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앨리스는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캐롤과도 멀어지게 되었지만 앨리스의 가슴 속에 루이스 캐롤은 아름다운 동화를 들려주던 백마탄 기사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대가들이 만들어낸 앨리스 이야기

루이스 캐롤이 앨리스 이야기를 처음 쓸 때는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려넣었다. 그러나 저명한 작가이자 캐롤의 친구인 존 맥도날드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출판을 결심하게 되면서 캐롤의 그림으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출판사측 결론이 나왔다.

이때 앨리스 이야기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사람은 ‘이솝우화’ 등으로 작품이 검증된 바 있는 존 테니엘(John Tenniel)이었다. 풍자잡지 ‘펀치’지의 단골 화가였던 존 테니엘은 앨리스 이야기의 정신을 멋지게 이미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러스트레이션과 스토리가 일치되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앨리스 이야기가 전세계적인 고전명작이 되면서 테니엘의 그림은 이후 작가들에게 모범적인 교본이 되었고 도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캐롤과 테니엘의 묘한 관계

캐롤과 테니엘의 관계는 묘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캐롤은 출판비용을 테니엘의 화료까지 포함해 모두 자비로 했기때문에 책 제작의 모든 것을 자기 취향대로 진행시켰고, 명성이 높았던 테니엘에게도 자기의 생각과 취향대로 그릴 것을 강요했다.
캐롤의 의도대로 한 덕분에 스토리와 그림의 호흡이 일치해 이상적인 그림을 얻게 되었지만, 테니엘은 캐롤의 억지에 질려서 후편의 그림은 끝까지 맡기를 꺼려할 정도였다. 캐롤은 등장인물의 치마길이, 머리모양, 표정에까지 세세하게 관여했고 대가인 테니엘은 이것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눈여겨 볼 것은 주인공인 앨리스의 모습이었다. 캐롤은 애초에 학장 리델의 딸, 앨리스 리델을 모델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앨리스 리델은 예쁜 소녀였지만 단발에 검은 머리, 그리고 다소 가냘픈 몸매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용하고 어두운 인상이었다.
그래서 존 테니엘은 ‘메어리 힐튼 버드콧’이라는 소녀를 모델로 했다. 메어리는 금발의 긴 머리가 치렁치렁하고 다소 통통한 편으로 활동적이며 밝은 분위기의 소녀였다. 존 테니엘의 앨리스 모델은 지금까지 모든 작가들의 교본이 되고 있다.


앨리스 모델 선정 뒷이야기

원래 존 테니엘은 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사진을 보고 그리는 스타일이었지만, 캐롤의 적극적인 권유로 살아있는 모델을 사용했다. 빅토리아 왕조의 이름높은 사진 작가였던 캐롤이 사진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캐롤은 사진의 한계를 알고 있었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실제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공 앨리스에 상당한 신경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존 테니엘의 그림은 동물이나 불가사의한 존재 등의 묘사에 있어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앨리스의 그림은 표정이 굳어 있어서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상상 속의 존재들이 놀라우리만치 너무나 생동감있게 묘사된 데 비해 주인공인 앨리스는 무표정에 가까웠던 것이 극적으로 대비되어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테니엘은 두 권의 앨리스 이야기에서 캐롤에게 종속적인 그림을 그린 후, 캐롤에게 편지로 ‘이상한 일이지만, 당신의 앨리스 이야기에 그림을 그린 후, 나는 삽화를 그릴 힘이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는 그 방면의 일은 하나도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테니엘이 그린 앨리스 이야기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시대를 초월한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위 기사는 2000년 10월호 특집 '앨리스와 떠나는 이상한 나라여행' 중 일부분만을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길민권 기자 

출처   일러스트하우스 http://www.illusthouse.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