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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카로 - 쉐퍼 선생님의 '자연학교'
이마이즈미 미네코 지음, 최성현 옮김 / 이후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대학생들의 여름 농촌봉사활동, 일명 농활에서는 농민들의 연령대, 성별을 구분해서 실시하는 저녁 일과인 분반 활동이 있다. 예를 들면 청년반, 부녀반, 장년반 등의 분류인데 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까 암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아동반 활동이다. 도시에 사는 대학생들이 농촌 어른들과 단번에 신뢰 관계를 쌓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진심어린 마음이라면 어린이들에게는 쉽게 가닿을 수 있는 것이고 어린이들이 집안 어른들을 움직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수순이었던 것이다.
쉐퍼 선생님의 '자연학교' 이야기를 접하면서 지난 시절 농활에서의 아동반 활동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쉐퍼 선생님은 아이들의 교육 현장에서 환경에 대한 의식과 생활의 변화를 고취시키며 이를 전 마을로까지 번져가게 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환경교육은 미래 세대의 교육이란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어른들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생명, 환경에 관한 일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나로서도 비온 뒤 아스팔트 바닥에 죽어있는 지렁이는 그냥 징그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물론 한 생명체가 죽은 모습이 감각적으로 좋을 수는 없는 일이겠다. 그래도 최소한 아스팔트가 너무 길게 깔려 있어 미쳐 건너지 못한 지렁이가 안타깝게 죽은 것이라든지 다행히 이 근처 땅은 살아있는 것 아닌가 등의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좀 우스운 질문인 듯 하지만 어떻게 하면 나는 지렁이를 징그럽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게 될까? 머리로 알지 않고 몸으로 느끼는 일,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 중요한 환경적인 이슈가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문명은 갈수록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상실하게 하는 방향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인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들은 결코 자연과 친화할 수 없을 듯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쉐퍼 선생님의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지렁이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보며 느끼는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인간이 자연과의 교감을 되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어렴풋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