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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 박종인의 나를 찾는 인도 기행
박종인 지음 / 조선일보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조선일보를 싫어하고 조선일보 기자들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자들처럼 과연 언론인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있는가 의심하지만 그들이 우리나라 어느 신문사의 기자들보다 기사를 가장 잘 쓴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들의 기사는 정말이지 연성, 견성기사 모두 살떨리도록 훌륭하다. 기자의 여행기를 읽고 느낀 점 두 가지.
첫째, 나도 여행기를 쓸 수 있겠다. 지나친 결벽성인지 소심증인지 자기비하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한 달이 채 안되는 여행기간 동안 쓴 여행기는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처음으로 방문한 지역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했다. 여행기, 기행문이란게 원래 그러한 류의 글쓰기 방식인데, 우스운 생각이란 건 안다.
하지만 오직 그 짧은 시간과 경험으로 무언가를 인식하고 판단해서 그것을 글로 써 세상에 발표까지 한다는 건 부질없는 일로 여겨지기만 했다. 자기가 얼마나 안다고... 내가 얼마나 안다고...모두 무지와 피상적인 이해에서 오는 감상에 불과할 뿐일 걸... 정확한 이해를 한다면 아마도 그런 감상은 생기지 않을 걸... 그 짧은 경험이 전부인 양 이야기하는, 코끼리 다리나 만지는 장님들...
그러나 이 여행기를 읽으니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자는 한 달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이 경험한 온갖 크고 작은 일들은 '기사화'란 작업을 통해 기록해두었다. 그래, 기록하는 일은 곧 기억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 글쓰기 작업을 통해 지나면 잊혀질 기억들을 간직해 두는 것만도 의미있는 일이야.
둘째, 기자에게 부여된 글쓰는 이로서의 양심의 문제. 이 글은 기자 한 개인의 여행기이기에 앞서 '기사'다. 그리고 기사란, 소프트(연성) 기사의 경우 인용 출처를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많은 정보들을 여기저기에서 수집해 주워담아 깔끔하게 자기 말과 적당히 버무려 놓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여행기의 부록으로 알려준 인도 소개 책자들의 특정 문장과 기사 문장이 일치하는 것을 여러번 발견하고는, '기자가 글쓰는 이로서 가져야 하는 양심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기자에게 문학 작가들 수준의 양심은 요구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기자에게 부여되는, 최소한의 글쓰는 이로서의 양심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이다. '기사'라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 있어서 기자가 지닐 수 있는 작가적 양심의 자유와 한계 사이의 적정선을 다시금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