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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마녀와 옷장 - 나르니아 이야기 1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전경자 옮김 / 열린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주로 사용하는 이메일의 아이디는 aravis다. 나르니아 연대기 '말하는 말과 소년'편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씩씩한 aravis 공주님. 공주님의 짝인 왕자 shasta를 필명으로 쓰던 이를 흠모했던 나는 아이디를 정할 때 조금의 미련도 없이 aravis라고 명했다.
그가 소개시켜 준 '나르니아 연대기'는 그에 대한 나의 마음과는 별개로 엄청난 매력을 안겨다준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마력에 빨려들어가 한숨에 연작을 읽었고 마지막 권을 덮고나서는 가슴이 벅찬 나머지 '나도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 하나 써야겠다'는 결심까지 했었다.
어렸을 적 때때로 장롱에 들어가 4차원의 세계에 들어가는 문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장롱 벽에다 머리를 짛이기고는 했던 기억. 이 책을 읽고 되새긴 그 추억은 어린 시절 누구나 품어왔던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이 바로 이 작품의 모티브요 모든 동화와 이야기가 추구하는 꿈이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손꼽히는 영문학자이기도 한 작가의 이 글은 영어문화권에서 자란 이라면 모두가 알 정도로 오랜기간 사랑받는 작품이라고 한다. 나르니아 연대기는 또한 판타지 문학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선과 악의 구별이 모호한 채 오직 위대한 힘만이 존재하는 요즘의 판타지 문학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충실한 그리스도교 우화로 쓰여진 이 소설은 신앙의 언어가 문학의 언어로 승화돼 인간에게 감화를 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매우 모범적인 해답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훌륭한 문학작품은 훌륭한 주제를 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르니아 연대기가 이야기로서 힘을 지닐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교 사상이라는 탄탄한 주제의식에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이야기-특히 사자와 마녀와 옷장, 마지막 전투의 두 작품-는 매우 치밀하리만치 그리스도교 사상에 일치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갖는 힘은 딱딱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신앙의 언어보다 오히려 강하고 주제의식이 빈약한 여느 이야기보다 뛰어나게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