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희의 일러스트레이션 미술탐사 탐사와 산책 6
고종희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한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한 미련한 일행이 이 무거운 책을 짐 안에 꾸역꾸역 넣고 와 일정 내내 '짐 중의 짐'으로 끙끙대며 다닌 덕에 긴 비행시간을 지루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던 책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미리 읽고 가야겠다던 여행전의 원대한 포부와는 달리 여행기간 중 난 거의 맨눈으로 미술작품들을 감상해야 했다. 미리 준비한 자료가 조금 있긴 했지만 작품 전시실이 바뀐 미술관들이 많아 무용지물이었고 잘하는 외국어가 없으니 가이드도, 오디오 가이드도 영어공부에 게을렀던 것을 자책하며 접어두어야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가슴을 콕콕 찔러댔고 안타까운 마음은 둘데가 없었다.

우연히 일행에게 이 책을 빌려 읽으며 뒤늦게서야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가우디, 고야, 클림트, 카라밧지오... 그들의 작품이 단순히 형식적인 미의 측면 외에 어떠한 콘텍스트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기내의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던 개인 전등은 나를 이들에게로 안내하는, 무대 위의 조명처럼 느껴졌다.

고종희 교수의 간결한 글은 친근한 목소리의 나레이터 같았다. 물론 이 책의 정보량은 많지 않고 개괄적인 수준으로 평이하게 쓰여졌지만 여행 중에 목말라했던 지식욕과 작품이해를 채워주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제목처럼 미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책은 위대한 작가들의 노력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 설명하고 있어 저마다의 예술세계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채찍질 역할을 하고도 있다.

책을 읽었던 당시의 상황 때문에 좀더 독특한 책읽기의 경험을 선사해준 이 책은 책읽기의 또다른 매력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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