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님께서 2003-09-23일에 작성하신 "가자, 진안으로..."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9/2 가자, 진안으로!!

어젯밤 숙취로 아침 일찍 눈을 뜨니 이제 6시다. 속이 쓰려 꿀물을 타서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릴려고 샤워를 했다. 물의 감촉이 너무 차가워 오한이 난다.

마당에 나가보니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이층집 주인아주머니가 잔디밭의 풀들을 뽑고 있다.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몸이 안 좋아 다시 자리에 누워 본다. 얼핏 잠이 들었나 보다.

홍순천씨가 와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모두를 깨우시는 소리가 난다. 시간을 물어보니 8시 20분이란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다.

밖에는 비가 더 내려오고 짐을 꾸릴려니 마음도 착찹하다.

사무실로 이사짐을 옮긴 8월24일도 비가 많이 왔는데 진안으로 떠나는 오늘도 많은 비가 내린다는 뉴스를 들었다. 9시 이사짐 옮길 차량이 왔다. 비가 와서 짐을 어떻게 싣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화물칸을 비가림 시설을 한 차량이 와서 한시름 덜었다. 먼저 매장 창고에 가서 보관하고 있던 내 짐을 싣고 사무실 짐을 싣으니 화분을 싣을 자리가 모자란다. 화분과 대자리의자는 추후 가져가기로 했다. 내 짐이 5톤 차량의 3/1정도를 차지했다.

아내와 짐을 나누다 보니 일부 짐을 버렸는데도 참 많다. 각자 차량에 나누어 진안으로 출발했다.

기남씨와 함께 화물 차량에 동승하여 떠났는데 화물차 기사님과 화물연대 투쟁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았던 화물차 지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도 추워하니까 자기의 옷을 챙겨주기도 하고 차에 히터를 틀어주어 따뜻하게 오게 되었다. 중간에 중부고속도로 오창 휴게소에서 모두 만나 점심을 먹고 모두들 커피 한잔 나누지 못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덕유산 톨게이트를 나와 구불구불한 길로 접어드니 기사는 강원도 정선가는 길처럼 느껴진다고 여기도 굉장한 산골인가 보다고 말한다. 진안 능길마을에 와서 짐을 내리는 중에 함양에 사는 양재혁씨가 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우리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비가 오는데도 지인들을 보고 싶어 왔다고 한다. 참 고마운 마음 씀씀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고 성여사님이 차려준 저녁 칼국수까지 먹고 다음을 기약하고 떠났다.

다행히 비도 멈추고 각자의 방을 배정하고 짐을 나누어 방 정리를 하고 이제 첫날 저녁 회의를 했다. 회의를 거의 마칠 즈음 박천창씨가 들어와 능길마을에서 박천창씨가 할려고 하는 일들을 대해 듣고 우리가 할려고 하는 일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나마 일에 대한 희망을 갖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산골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서로 담배를 돌려 피우며 맘을 다스렸다. 모두들 보니 피곤한 얼굴이다. 정기석씨는 어제 너무 무리를 했는지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자고 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냥 잘 수 없어 자귀나무뿌리를 담근 술을 꺼내어 한 잔씩 돌렸다. 약술이라고 아내가 술병에 “많이 마시면 큰일나요”라고 경고성 글까지 붙여놓았으나 꾼(?)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12시가 넘어 자리를 정리하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조용히 산골의 밤이 깊어만 갔다.

마음만은 편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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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씨님께서 2003-09-17일에 작성하신 "2003년 9월 2일, 화요일-하루 종일 비가 오다, 착잡하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주)**과의 일을 정리하고 진안으로 옮기는 짐을 싣는 내내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다행히 오전 안에 짐을 정리하고 춘천을 떠날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밑반찬과 김치를 챙기러 집엘 들렀다. 걱정스런 얼굴을 하는 아내를 일별하고 하고 지호에게 인사를 했다. 지호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외면하고 손사래만 쳤다. 수연이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차에 올랐다.

자! 이제 출발이다.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비는 더욱 맹렬하게 나리시고 차안에 탄 일행(최용재, 정기석, 하지혜, 나)은 모두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없다. 가슴 속에 만감이 교차하기 때문이리라. 어색한 분위기를 깨 보려고 농을 했다. 반응이 시큰둥하다. 조수석에 앉은 기석 씨에게 신나는 음악을 주문했다. 우연치 않게 흐르는 첫 곡은 ‘What a wonder world'다. 굵직한 목소리가 가슴을 때린다. 음악이 흐르자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는다. 빗방울은 더욱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고 모두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는 듯 말을 거는 사람이 없다. 그래!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러 가는거야.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나 영동으로 접어들었다. 오늘 새벽까지 석별의 술잔을 돌린 두 사람(기석, 지혜)은 잠이 들었다. 함께 자리에 있었던 영표 씨가 걱정이 되었다. “운전 괜찮니?” 전화로 확인을 하고야 안심이 된다. 운전은 괜찮은데 기름이 떨어졌단다. 쫄쫄이 굶으면서라도 함께 하자던 약속들이 실감났다. 다들 주머니에 현금은 물론 카드도 없는 듯 하다. 이제부터 굶는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 그렇기는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째 급여를 못 받아 식구들은 카드 빚으로 연명하고 있다. 아내에게 담배 값을 달라고 손을 내밀기조차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사 비용도 없이 덜렁 짐을 싣고 이주를 감행하는 우리가 너무 무모한 것은 아닌지? 하늘의 가호가 있기를 바랄뿐이다. 아직 일을 다 정리하지 못해서 같이 이주하지 못하는 정식 씨를 포함해 9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무사히, 잘 적응하고 서로 아름다운 관계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두루두루 전화를 주고받고 시덥지 않은 잡담을 몇 마디 하다가 만나기로 약속한 오창휴게소에 도착했다. 세대로 나누어 두어 시간 전에 출발한 식구들 얼굴이 그새 반갑다. 주머니를 탈탈 뒤져도 점심 값은 없었다. 박흥민 씨 카드로 계산을 하고 눈물 젖은 점심, 황태 해장국을 먹었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고 마음도 착잡하기 그지없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이라도 마시자는 제안을 못들은 척 하고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차는 진안으로 향했다. 극도로 긴축하지 않으면 앞날이 어둡다. 진안에 거의 도착할 즈음 반가운 전화 한통이 왔다. 몇 해 전에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재혁이다. “행님요 어디만치 왔소?”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온다고 마중을 오는 중이란다. “얼릉 얼릉 어서 오이소~” 가까운 곳에 지인이 있어 마중 나온다니 한결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드디어 진안. 능길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은 빗속에 조용히 앉아있다. 환영의 플래카드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고즈넉하다. 이삿짐을 모두 내리고 차가 춘천으로 떠났다. 온 길을 되짚어 가려면 밤이 되어야 가능했기에 서둘러 떠나는 기사 아저씨를 배웅하며 이제는 정말 우리가 능길마을 사람이 되는가 싶다. 사무실로 쓰기로 한 공간은 아직 정리가 안돼 폐교 현관을 대충 치우고 짐을 쌓았다. 각자의 숙소를 배정하고 개인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2·30대가 한방을 쓰고 지혜 씨가 방을 따로, 40대가 또 다른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고 식당에서 마련해준 칼국수를 먹었다. 재혁 씨 일행을 보내고 회의를 했다. 진안에서의 첫 회의. 다들 지치고 힘들긴 하지만 표정들이 밝다. 식사 당번을 정하고 몇 가지 규칙을 만들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단한 계획을 세웠다. 우선 이번 주에는 지혜 씨와 민종 씨가 식사 당번을 하기로 했다.

본사에 대한 불만도 몇 가지 토로하고 앞으로 잘 해보자는 다짐을 할 즈음 누군가 문을 노크 했다. 박천창 씨다. 마을 대표로 많은 일을 챙기는 그이가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숙소에 온 것이다. 앞으로 진행 할 몇 가지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동안 우리는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잘 해봅시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어 서로 사랑한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인사를 하고 하루 일정을 마쳤다.

담배 한대씩을 물고 밖으로 나왔다. 그새 비는 어느 정도 멈추고 구름 속에 희부연 달빛이 보인다. 담배를 살 돈도 없어서 겨우 남은 담배 몇 개비를 나누어 들고 길게 연기를 내 뿜었다. 박흥민, 정기석, 최용재, 정기남, 김민종, 홍영표, 하지혜, 아직 오지 않은 김정식, 그리고 나. 어렵고 힘든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리라. 모두 함께 어깨를 걸고 지친 걸음 서로 부추기며 이 길을 가리라. 마주 쥔 두 손에 힘을 주어 서로를 챙겨 주며 끝까지 가리라.

한참을 서성이고 있어도 아직 저녁 8시다. 시골의 밤이라 더 길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능길에서는 술을 자제 하자는 약속을 슬그머니 어기고 싶은 마음이 다들 들었던 모양이다. 흥민 씨가 약술이라도 한잔 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자귀나무 뿌리로 담근 약술인데 혼자서는 두 달 동안 복용 할 양이란다. 며칠 무리해서 컨디션이 말이 아닌 기석 씨를 제외 하고는 다들 싫지 않은 표정이다. 간단한 안주에 약술을 놓고 둘러 않았다. 이런 저런 얘기로 꽃을 피우며 밤이 깊어갔다. 두달치 약이 다 떨어질 즈음 12시가 되었다. 이젠 내일을 위해 잠을 자 두어야 하겠다.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능길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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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장만옥, 양조위 주연 <화양연화>

문득 대학시절 보았던 <첨밀밀>이
보고싶어졌다.
어렴풋한 기억의 틈에서
장만옥과 여명의 애틋한 사랑이 아물거린다.
절제된 언어와 묘한 매력의 눈빛.

중독이라도 된듯 난 <화양연화>를
연이어 보고 말았다.
어둡고 붉은 빛이 맴돈다.
그리 밉지 않은 비가 종종 내린다.
어느 순간 난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사랑은 또 그 희망은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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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4-2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양연화네요....... 장만옥이 찍은 영화 중에...장만옥의 우아한 슬픔이 젤로 돋보였던 영화...

2004-04-29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여흔 2004-04-30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장만옥,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죠. 그리 예쁘다거나 아름답다는 느낌은 없지만 왠지 모를 매력이 넘치는 ... ^^
 

홀씨님께서 2003-09-04일에 작성하신 "마을에 왔습니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마을에 왔습니다.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능길마을 (
http://www,nungil.org ) 이지요.

하루종일, 사무실(아마도, 옛 능길초등학교 교무실 자리..) 대청소, 자리배치, 

방 배치, 각자 짐 정리를 하고,

막, 인터넷세팅까지 마쳤습니다.


밥도 2끼째 해먹었습니다.

이번주 밥 당번은 하지혜, 이민종입니다.


나는, 그새 별명도,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에서,

어이, '난장이'로,

이제는, 그냥 '난장'으로 진화했습니다.


늘, 자리와 술잔을 비워두겠습니다.

언제든, 마을에 와서,

자리와 술잔을 채워주기 바랍니다.


* 늘, 생필품(=주류, 담배, 그리고 쌀과 각종 반찬류 등)이 부족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우리 9명은,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꼭, 올때 챙겨오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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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었습니다.
2003년은 참 이상한 해였습니다.


<STRONG></STRONG>   


전쟁이라는 게 일어났습니다.
정말로 전쟁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이들이 있었고,
그 전쟁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쪽 편에서는 그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누구는 전쟁이 벌어지는 그 땅으로 떠났고,
꼭 그 땅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그 전쟁을 치루어내었습니다.
너무 아픈 봄이었습니다.


<




여름


전쟁을 겪은 그 나라는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전쟁을 벌인 그 나라는 잿더미가 된 나라에 가서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던 우리들은
그 땅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자
저금통을 모았고, 모금함을 돌렸습니다.
옷을 만들어 팔아 그 값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웃 나라 그곳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일어설 수 있을 거예요,
누구의 도움이나 누구의 계획이 아니라
당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의 손으로
꼭 일어서야만 해요!!"







가을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
우리는 이름을 이어 썼습니다.
힘 없고, 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세상에 대고 이야기하자고,
나라의 윗자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분들에게 이야기하자고
이름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힘모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침략군을 보낸 나라의 백성이고 싶지 않다고,
우리 군인 아저씨들을 침략전쟁터로 보내지 말라고.....


<




겨울   


끝내 대통령과 정부는 우리 같은 사람들,
힘없고 약한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은
외면했습니다.
파병을 하겠다고 했지요.

막아야 한다, 그 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누군가 음식을 끊고 길로 나섰고,
그 곁에 소망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 천막을 찾았고,
꿈을 적은 잎사귀를 나무에 한 가득 걸었습니다.

보름 동안의 단식, 그리고 잇달아 이어진 백인이어굶기.











이제 혜화역 4번 들머리에 쳤던 소망의 나무 천막은 걷었습니다. 하지만 파병을 막는 시민단식 모임 - 소망의 나무 모임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소망의 나무 천막을 거둘 때 내다보이던 것은 바로 그 다음 주 국회에서 표결이 있을 거라 했기 때문이었지요. 그 때 우리는 국회 앞으로 모이자고, 파병 안에 찬성표를 던지러 국회로 들어가는 의원들 앞에서 마지막까지 간절하게 이야기해보자는 것을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리며 파병은 안 된다고 이야기하자고, 그것으로 안 된다면 그 앞을 가로 막아 우리를 짓밟고 들어가라고 끝까지 막아보기라도 하자며 말이지요. 그리고 똑똑히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파병, 그것은 끝내 우리 국민 모두를 살인자로 만드는 일인데 그 엄청난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 그 사람들을 똑똑히 보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측하던 것과 국회 일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파병 안에 대한 국회 표결이 미루어진 것이지요. 해를 넘길 판입니다. 파병에 대해서야 4당 모두 보내는 것으로 합의를 한 상태, 언제 표결을 해도 통과를 시킬테니 그네들 가운데에는 서두르는 이가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들 밥그릇에 직결된 정치개혁관련법안을 가지고나 싸우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소망의 나무에서 준비한 것이 바로 "아주 특별한 음식점"입니다. 이것을 왜 하느냐고요? 그럴싸한 명분을 들어 에두르지 않고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첫번 째는 소망의 나무가 천막단식농성을 하면서 든 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가운데에서도 신문 광고를 내느라 쓴 돈이 모자라서 그 값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끼리 전쟁에 대해, 파병에 대해, 평화에 대해 마음을 모으고 나누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여론으로 결정권자들을 압박해가는 흐름이 필요하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잇달아 신문 광고를 커다랗게 내곤 했습니다. 우리의 간절함을 더 하기 위해 이어쓴 이름들을 가득 채워 광고를 내었습니다. 바끼통 이름이어쓰기 때부터 하면 모두 일곱 차례.  


물론 돈을 마련하기 위한 음식점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단순 돈벌이 하는 행사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름으로 한 해 동안 길게 이어져온 전쟁반대, 평화활동을 정리하는 자리가 될 수 있게끔 준비하려고 해요. 또한 앞으로 있을 "국회 앞 모이기" 때까지 파병반대의 뜻을 놓지 않고 힘을 모아가는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준비했습니다.






특별한 음식점, 표를 팔려고 지난 이틀 참 많은 분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솔직히 호응이나 관심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요. 실은 '왜 자꾸 무슨 일을 벌이냐'고 눈쌀 찌푸리는 분 더 많지 않을까 싶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던 걸요. 첫날은 들고 나간 표가 모자라 못 팔 정도였어요. 그래서 급하게 마스터 인쇄를 해서 표를 새로 찍어 팔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우리 백창우 아저씨, 아저씨를 찾아갔어요. 표 몇 장이라도 팔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거예요. 우와, 그런데 아저씨가 그 날 공연을 해 주실 수 있다고 그래요. 아저씨 뿐 아니라 시노래 모임 나팔꽃의 김원중 님, 홍순관 님, 이지상 님, 이수진 님까지.

너무 좋아 큰일 났어요. 이 아저씨들이 공연한다 하면 일부러 예매를 해서 보러 오는 사람들만 해도 꽤 많을 텐데, 우리 음식점 완전 불이 날 것 같거든요. 이거 어떻게 하지? 먼저 빌려 놓은 음식점 터는 암만 보아도 너무 좁은 거예요. 그래서 어제 새로 더 크고, 멋진 곳을 빌렸습니다. 잘 보세요, 장소 바뀌었어요. 여기요, 이 아래 그림, 여기!








해가 바뀌었습니다.
2004년이 되었습니다.
새해에도 여전히 이상한 일들만 가득 이어질지 모릅니다.

첫 주말, 특별한 음식점에서 만나요. 새해 이야기 그 곳에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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