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님께서 2003-09-30일에 작성하신 " 마흔, 잔치는 시작됐습니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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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편지 9> 마흔, 잔치는 시작됐습니다.
어제는 생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마흔한번째쯤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살아오면서 생일을 의식해서, 어떤 의식으로 치러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우선, 이해당사자인 스스로가 생일을 다른 날과는 달라야 한다고 전혀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도, 일체의 기획되거나 의도된 의식, 또는 행사류에 극도의 거부감 또는 어색함을 드러내곤하는 나를 진작에 간파하고 있습니다. 그냥 일상과 다름없이 그대로 편하게 내버려 두거나, 모르는 척, 가벼운 긴장으로 대해줍니다.
이렇게 까탈스럽게 구는 게, 보기에 따라서, 또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남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보이려는 연출된 모습으로 오인, 남을 불편하게 만들기 딱 알맞습니다.
나도 그리 받아들일까봐 불편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없습니다.
어떤 의식이나 행사의 주제, 또는 주인공 역을 감당하기에는, 내 하찮은 진심일지언정, 가만히 참아내지 못하기 떄문입니다. 개선되기 쉽지 않은 괴질로, 아마도 무덤속까지 안타까이 보균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마을에 와서 생일 의식을 치르고 말았습니다. 초코파이 케익, 고급 곡주, 모두의 메시지를 새긴 양초, 고급 안주 등으로 데코레이션된 저녁식사 자리의 헤드테이블. 그리고 이어지는 생일 축하 노래.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힘들고 어색한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술이, 의식의 거부감에서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술은 어느 순간 마을 지도자인 박선생이 꺼내온 백포도주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우물속에 소중하게 보관했두었던 대포알 소주로 이어지고, 끝내 인근 안성면 단란주점(註 :말그대로 단란한 주점입니다. 도시의 그 왜곡된 그 주점이 아닙니다.)까지 쳐들어가 꺼이꺼이 노래를 하고서야, 지난했던 생일잔치의 끝을 보았습니다.
내일은 동향면의 면민체육대회, 즉 마을 잔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천절에는 누구의 결혼식 잔치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잔치가, 마을 곳곳에서,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을에서 만난 마흔, 또는 마흔하나. 이제, 잔치는 시작됐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