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
알렉스 커쇼 지음, 윤미경 옮김 / 강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사진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습성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초등학교때 사진 중에는  사진찍기 싫어서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고개 돌린 사진이 몇 컷 된다.고등학교때 찍은 사진은 대게 어쩔수 없이 찍어야 했던 단체 사진이 전부다. 한 해 통틀어 딱 2장의 사진이 있는 셈이다.봄, 가을 단체 소풍 사진..요즘 같은 디카 시대는 나를 좀 곤혹스럽게 한다. 내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남을 찍는, 또는 자신을 찍는 사람들이 가끔 이상하게 보인다.

왜 그렇게 사진 찍히기 싫었을까? 일단  사진의 피사체가 되어 어색한 웃음을 지어야하는 그 몇 초가 싫었던 듯 하다.특히 바보같이 웃음을 지으라고 '김치,치즈' 하는 소리에 따라 웃어야 하는게 곤욕이었다.결국 남들 다 웃고 있는데 나는 삐죽거리고 있게 된다.또 하나 혐의를 둔다면- 나의 주장이지만- 사진빨이 영 안받는 다고 믿기 때문이다.몇 몇 친구들과 동료들이 내 주장에 동의를 해주면서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말았다.

사진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찍은 적도 없다.대학교 시절 캐논 AE 1을 들고 몇 몇 시위 장면과 몇 몇 인물 사진을 찍은 적이 있지만 이내 관심을 잃었다.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약간의 기술적 공부가 필요했는데 연애 하느라 거기까지 공부하긴 싫었나보다.

어쨋건 내게 사진은 인스턴트 음식과도 같았다.그저 대충 빨리 찍고 찍히는게 편안한.가끔 유명한 사진 작가의 사진들을 보면서 ' 잘 찍었네 ' 하는 정도의 느낌을 갖는 정도였다.미술 작품을 보면 애써 그림과 화가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썻지만 사진은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로버트 카파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다. 카파는 나의 전공 분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조금 더 친숙했다는 정도다.나는 '카파이즘'이라는 저널리즘의 한 신념으로 먼저 그를 만난 셈이다. 

이 책 <로버트 카파>는 아주 잘 만들어진 TV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다.책의 구성이나 적절한 인터뷰등은 이 책을 토대로 다큐멘터리 대본을 써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다.프롤로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참전 용사이야기 부터 시작한다.참전 용사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카파가 찍은 유명한 오마하 사진들을 보여주고 감회를 듣는 것이다.이 사진들을 본 사람들의 소감을 소개하며 카파에 대한 보편적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카파의 작품을 보고난 후 폭력의 상흔은 보이지 않고 아름다움과 슬픔만 보인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다.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삶에거 가장 잊지 못할 순간들을 흑백의 사진으로 담아낸 이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어 했다.인간 정신의 순수성을 보여주는 시각적 유산을 남긴 이 도박꾼은 과연 누구였단 말인가?'

이제 참전 용사들의 감회어린 시선과 함께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카파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책 속으로 들어가면 1948년 헝가리로 돌아가고 있는 카파를 만나게 된다.17년만의 고국 방문이다.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처참하게 변해 버린 부다페스트.낯익은 골목길은 유령이나 나옴직한 곳으로 바뀌었다.카파의 참담한 시선은 이제 시간을 따라 거꾸로 거슬러 올라 간다.

프롤로그부터 카파의 일대기를 끌어오기 까지 과정이  TV 다큐멘터리적이다.적절한 구성을 통해서 카파의 이야기로 독자를 조금씩 조금씩 몰아가는 방식이 즐겁다.

이 책은 저자의 발품이 그대로 느껴진다.저자는 카파의 일대기를 총체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기존의 많은 자료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그리고 적절한 시점에서 그 자료들에 묘사된 카파의 모습과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은 카파의 인상을 그대로 배치한다.TV 다큐멘터리로 지차면 나레이션으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다가 필요한 시점에 적당한 컴퓨터 그래픽과 적당한 인터뷰를 넣어서 주는 것과 유사하다.이것은 영상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구성이다.영상세대들은 이러한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인용된 인터뷰나 내용들 역시 아주 세밀하고 사적인 것들이어서 흥미롭다.카파가 교류했던 사람들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그들과 카파의 관계를 그리다 보면 마치 20세기 초반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려 놓은 듯 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앙리 카르티에 브레송,베르너 비쇼프,존 스타인벡,어니시트 헤밍웨이,존 휴스턴,하워드 휴즈.....

카파의 오랜 친구였던 작가 존 허시는 그를 '스스로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말했다.이 표현은 카파를 한마디로 요약한 가장 유명한 말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초보 사진가 앙드레 프리드만이 만들어낸 이름 '로버트 카파' , 자기 내부에 있는 전쟁의 공포를 넘어서려 했던 사람,언제나 쾌활함을 잃지 않았지만 내면에는 황폐함과 상실감이 자리잡고 있던 사람,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 속으로 자신을 기꺼이 밀어넣고 인생을 즐긴 사람....'로버트 카파'로서 '로버트 카파'보다 더 훌륭하게 그 삶을 만들어 낸 사람.

그는 5번의 전쟁에 참가했다.그는 항상 자극을 원했던 듯하다.종군 기자들이 전장에서 느끼는 목숨을 건 흥분같은 것이다.카파는 전장을 찍었지만 언제나 전쟁을 증오해 왔다.'실직한 종군기자'가 되길 원했지만 세상은 그의 뜻대로 발 맞추진 않았다.그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일종의 '심리적 외상'을 입었던 듯 하다.국제 분쟁이 있거나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는 곳에서  일하는 국제 기구 요원들은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인간의 잔혹함과 충격적 죽음에 수시로 노출되어 일을 하다보면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된다고 한다.로버트 카파는 5차례에나 걸쳐 죽음이 즐비한 현장에 있었다.강인하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 역시 심리적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카파가 사진과 자신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 일본으로 초청을 받게 되면서 한 말은 그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보여준다.그는 조카에게 "다시 전쟁에 가야한다면 난 총으로 자살을 해버릴 거야.난 너무 많은 걸 봤어." 1951년 함께 일했던 작가 어윈 쇼 역시 카파를 이렇게 말했다.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난 아침이면 카파는 비로소 자신이 통과해온 비극과 슬픔이 그에게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창백한 얼굴,불길한 꿈에 쫓겼던 나른한 눈.카메라를 통해 그토록 많은 죽음과 악을 들여다봤던 남자가 마침내 여기에 있다.절망과 고통 속에서 후회를 하고,세련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남자가 여기에 있다.카파는 거품이 이는 진한 술을 들이켜고 몸을 부르르 떨며 실험을 하듯 오후의 미소를 지어본다.괜찮다.' 카파는 슬픔과 비극을 잊기 위해 가면을 써야했다.본인 스스로도 완벽하게 속을 만한 가면이 필요했다.술과 여자 그리고 도박이 언제나 그의 안주머니에 들어있었다.그를 얼핏 아는 사람들은 그를 '유쾌한 보헤미안'이라고 말했지만 그를 조금 더 깊이 아는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었는지 증언한다.    

나는 이 책을 컴퓨터 앞에서 '매그넘' 홈페이지를 띄워 놓고 읽었다.이 책에는 중요한 몇 개의 사진 밖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이 책은 연대기 순으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사진집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책에 등장하는 내용과 그 당시 카파가 찍었던 사진을 그대만 만날 수 있다.20세기를 '야만의 시대'라고 한다면 로버트 카파는 언제나 그 한복판에 서서 셔터를 눌렀다.그의 사진에서는 전쟁의 절규 소리가 들리고  얼핏 핏내음도 난다.그의 작품을 보다가 다른 매그넘 작가들의 사진을 살펴봤다.사진의 기술이나 구도라는 측면에서 로버트 카파보다 뛰어난 작품들은 수 도 없이 많다.그러나 카파의 사진에는 어떤 예술적인 사진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강한 힘이 있다.그것은 외롭고 고독했지만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한 인간의 힘이며 또한 진실의 힘이다.로버트 카파에게 진실보다 더 뛰어난 사진 구도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파는 말했다."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가까이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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