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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가든 2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권기태 지음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유진스미스의 <파라다이스 가든>이다.
중학교 때인가 코팅해서 쓴 책받침 사진중에 하나이기도 했다.물론 곧 소피마르소에게 자리를 내주었지만 말이다.
<파라다이스가든>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먼저 유진 스미스의 아이들이 걷고 있는 숲이다.또한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이기도 한 강원도 영월의 도원 수목원이기도 하다.하나 더 콕 찍어 이야기하면 김산이 만들었던 모형 도원수목원을 주인공 김범오와 강세연이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파라다이스 가든>은 도연명이 말한 동양적 이상향이다.각 장이 시작할 때 마다 등장하는 도연명의 이야기는 도원수목원을 참된 이상향으로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염원과 궤를 같이 한다.작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출생의 빛과 연관 짓는다.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모두 죽음과 출생에서 만나는 동일한 하얀 빛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죽음을 맞은 사람은 자신의 몸과 의식이 가벼워짐을 느낀다.이제 고단한 현실의 끈에서 놓여 날 때가 된 것이다.임종을 앞둔 이는 긴 터널 끝에 환한 빛 한 줄기를 만난다고 한다.그리고 그 빛을 향해 너무도 가볍게 나아간다.이는 출생 과정에 비유되기도 한다.태아는 자궁의 어둠 속에서 컴컴한 산도 끝에 있는 하얀 빛을 본다.그리고 인력에 끌려 가듯 그 터널을 지나 밝은 빛과 하얗고 커다란 손을 만나게 된다.혹자는 밝은 빛은 산부인과의 전등일 테고 하얀 손은 의사의 손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출생과 죽음이라는 두 세계를 통과하는 과정에 공통적으로 거대한 하얀 빛이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새로운 세상은 거대한 하얀 빛으로의 극적 전환을 통해 이루어진다.무게도 가치도 고통도 쾌락도 없는 고요의 상태...
소설 <파라다이스 가든>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적지 않게 당혹스러웠다.너무 훌륭한 한국 소설을 만났다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었다.프롤로그에서 불러 일으켰던 호기심은 몇 장에 걸쳐 3류 기업소설로 바뀌어 갔다.성림건설의 후계 구도를 두고 벌어지는 권력 다툼이 그 내용이다...배다른 동생에게 경고하기 위해 애완견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그룹 회장인 아버지를 가택 연금하여 의결권을 찬탈한다.지분 확보를 위한 가신들의 음모가 이어진다.....이쯤 봤을 때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신문 연재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기업만화 스토리와 그닥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도 펼친 책 쉽게 접을 수는 없는 법...
소설은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이분화된 구조를 갖고 있다.마치 80년대 민주 대 독재정권의 대결 구도를 자본 대 자율주의로 돌려 놓은 것 같았다.한동안 만나기 힘들었던 이러한 이분화된 구도는 '상상력의 부재'와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한국소설이 후일담에 이어 사소설화 하는 경향은 나름대로 역사적 맥락을 가진다.한국소설을 즐겨보진 않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무한한 문학의 나래를 펼치리라는 작은 희망은 가져본다.그래서 한해에 몇 권씩 의무감을 가지고 읽곤 한다.그런데 소설 <파라다이스 가든>의 구성과 스토리 전개는 적당한 통속성과 적당한 복고주의로의 회귀처럼 보였다.소설을 이루는 두 축은 원직수의 세계/김산의 세계로 양분화된다.원직수의 세계는 자본의 세계이며 집중화된 권력의 세계이다.원직수는 성림건설이라는 토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원직수의 세계에서 동생 원제현과의 권력 다툼은 또다른 모순 관계를 만들어 낸다.김산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이며 자율의 세계이다.김산은 도원 수목원이라는 공동체 속에 미래를 만든다.이 공동체는 아나키즘에 바탕을 둔 자율적 마을이다.김산의 공동체에는 김산의 죽음 이후에 아들을 필두로한 개발 수용론이 또다른 내적 모순으로 갈등한다. 원직수의 세계와 김산의 세계가 공통되는 가치가 있다.그것은 이상향을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바람이다.물론 가치는 적대적이다.원직수가 바라는 이상향은 모든 것이 황금으로 이루어 졌다는 '엘도라도'이다.김산의 이상향은 사적 소유와 그로 인한 갈등이 없는 '무릉도원'이다.자본의 이상향과 자연의 이상향이 도원수목원이라는 현실적 공간 안에서 부딪히게 된다.원직수가 자신의 이상향을 '엘도라도'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세계에서 두가지 형태로 구현된다.하나는 자본의 무한확장이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는 자유방임형 시장론자들이다.또 한가지 '무릉도원'에 상대되는 가치로 서구의 물적 가치가 행복의 척도라고 보는 물신론들의 모습이다.이 둘을 한가지로 수렴할 수 있는 말은 '서구 근대화론'이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규정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저자가 '도원수목원'을 설정하는 것은 이러한 '서구 근대적 가치'에 대한 대안을 내비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상투성을 만나게 된다.자본과 개발논리에 대한 역으로 등장하는 '생태주의'.이것이 얼마나 상투적인지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느리게 살기' '자연공동체' '생태주의' '아나키즘' 이러한 말들은 최근 유행어에 가깝다.사회에 어떠한 트렌드가 형성되는 것은 물론 그 원인이 있다.급속한 근대화가 가져온 부산물들이 그 첫번째 원인이 될 것이다.치열한 경쟁,탈출구 없는 사회,현저한 인간소외... 민주화를 위한 열정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는 믿음과 그 만큼의 실망은 시스템 전체를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한 계기도 될 것이다.결국 '생태주의적 아나키즘'은 현재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저항의식과 미래의 이상적 삶에 대한 투신하는 도덕적 정당상을 부여해준다.거기에 아나키즘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대한 부정은 전근대적 조직관계의 위계에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산소공급기 같은 역할을 해준다.자본주의적 근대에 저항하는 이미지로서 최고로 매력적이다.그러나 이러한 가치와 공동체가 문학작품 안에서 양분화된 사회의 한 축을 구성하니 왜 이렇게 상투적이고 진부해 보이는 것일까? 마치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알기 쉽게 풀어놓은 선/악구도를 바라보는 것 같다.
주인공 김범오의 캐릭터도 너무나 상투적이다.물론 그가 현실의 족쇄에서 탈출하기 까지의 심리적 번민이 어느정도 잘 그려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가 '도원수목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독자는 처음부터 알 수 밖에 없다.온통 집안을 화초와 나무로 꾸며 놓은 남자,도시 한 복판의 옥상을 누구나 반할 만큼의정원으로 꾸며놓은 남자.그거 아무리 번민을 한다고 해도 소설 속에서 가는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그렇다면 그가 중간 중간 고민하는 과정들은 결과를 상정해 놓고 이루어지는 요식행위처럼 보여질 뿐이다.작가는 또한 대중소설의 통속성을 위해 김범오를 특공대 출신의 청년으로 상정한다.왜 특공대 출신이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성림건설의 도원수목원 접수과정에 발생하는 폭력에 맞서 몇 가지 액션을 선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김범오는 액션씬에서 불의의 기습을 받아 고전할 때도 있지만 대개 어느 정도 액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날쌘 모습을 보여준다.소설 속 주인공이 늘 문약할 필요는 없지만 액션씬을 염두에 놓은 캐릭터 설정은 역시 미니시리즈 드라마용이다....책 말미에 등장하는 김산이 공동체에 투신하게된 젏은 시절이야기는 어떤가?공동체 삶을 결심하게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아나볼 논쟁,아나키즘 폭력론을 얼핏 심어넣다니...의욕과잉의 상투성인가?
모든 사건이 종결된 에필로그마저 진부하다.새로운 생명이 엉클어진 세계에 새로운 희망을 안고 나온다는 이야기.. 희망을 상징하는 메타포는 역시나 아기인가?
내용의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나 스피디하게 읽힌다.사건의 진행이 톱니바퀴 돌아 가듯 착착 이루어진다..또한 앞 장에서 이루어진 사건의 내막이나 그 이후 여파들을 다음 장에서 바로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준다.같은 화자의 시선이 아니라 상대의 시선 또는 3자의 시선으로 사건들을 이어가기 때문에 동일한 사건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그러니 앞의 일이 왜 일어났지를 알아보기 위해 책을 앞 뒤로 넘길 필요가 없다.또한 수목원에서 만나는 새,나무,꽃 들에 대한 묘사는 아주 사실적이며 뛰어나다.작가의 자연에 대한 관심을 세세히 알아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점이다.실제 도원수목원이 있다면 직접 가서 작가가 언급한 새소리와 물고기의 움직임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김산의 죽음이었다.노오란 해바라기 숲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늙은 김산이 눕는다.스르르 의식은 흐려지며 몸은 가벼워진다.마치 고호의 해바라기 밭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고호의 그림을 패러디했던 구로자와 아카라 감독의 <꿈>이라는 영화도 생각났다.그리고 함형수 시인의 유일한 시...
<해바라기의 비명>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소설<파라다이스 가든>은 2006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신예작가가 이정도의 분량을 아귀가 맞아떨어지게 이끌어간 것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또한 그가 가진 많은 재주들을 언듯 언듯 볼 수 있어서 앞으로 기대하게된다.바람이 있다면 조금 더 아무것도 씌여 있지 않는 흰 원고지 위에서 그의 재주를 펼쳐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한국 소설은 새로운 공간의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