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3차 협상이 9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에서 막을 내림으로써 예정된 협상의 반환점을 돌았다. 올 연말까지 5차 협상이 예정돼 있다. 양측은 이번에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상품·섬유(미국), 농산물(한국) 분야에서 개선된 개방안을 주고 받았지만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는 “핵심쟁점에서는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글 협정문 효력 인정, 전문직 자격증 인정을 위한 협의체 구성 등 일부 진전도 있었다.
◇상품·무역=미국 상품 개방안에 대해 우리측은 “미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며 대폭 개방을 요구했다. 미국은 개선된 개방안을 내놓았고, 공산품·수산물·임산물 등에서 900여개를 10년 내 개방에서 즉시 개방쪽으로 옮겼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기대가 훨씬 더 크다”고 실망감을 표시했고, 미국으로부터 “계속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약속에 만족해야 했다.
섬유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 섬유 부문 개방안에 대해 최장 10년 개방 계획은 너무 긴 만큼 5년 내 철폐를 요구했다. 미국은 당초 전체 품목 중 60~70%를 ‘기타(Undefined·개방 제외 또는 관세 철폐에 10년)’ 항목으로 분류,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이 주장하는 섬유 특별 세이프가드(긴급수입 제한조치·수입량 급증으로 자국 산업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발동) 부문에서는 ‘미국이 우리측 원산지 표시 완화 요구에 동의할 때’ 도입을 검토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문제는 개성공단 제품에 ‘한국산’ 표시를 하는 문제가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로서는 ‘개성공단은 역외가공 지역이므로 한국산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웬디 커틀러 미측 수석대표는 “내 사전에는 K라는 단어(개성공단)는 없다”고 버텨 추후 과제로 남았다.
무역구제는 3차 협상에서 뜻밖의 복병이었다. 한국은 반덤핑 조치 발동 요건 강화 및 발동수준 약화를 요청했다. 미국은 “반덤핑은 FTA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면서도 우리측 제안을 주의깊게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문제에서도 신경전만 이뤄졌다. 커틀러 대표는 “한국이 미국에 매년 자동차 70만~80여만대를 수출하고, 우리는 한국에 4,000대를 판다”며 시장 개방을 거듭 촉구했다.
의약품 분야에서 한국은 약효가 검증되고 저렴한 의약품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연내에 시행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미국은 제도 도입 자체는 수용하면서도, 의약품 선정과 가격 결정 때 이해관계자 참여를 보장하고 독립적인 이의신청 기구를 만들자고 했다.
농산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민감했다. 미국은 예외없는 관세 철폐에서 물러나 우리측에 ‘미국 내 생산은 많지만, 우리나라 농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품목’을 중심으로 양허 개선을 요구해왔다. 김종훈 수석은 “대응 방안을 신중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산물 세이프가드 도입 문제도 관심이다. 우리로서는 미국산 농산물의 대거 유입에 따른 국내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특별 세이프가드’ 도입을 주장했다. 미국은 부정적인 입장이면서도 대상 품목, 발동기준 선정방식 등에 관심을 표시, 절충 가능성을 내비쳤다.
◇서비스·투자=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국제 수지 또는 대외 금융 위기시 송금, 국경간 자본거래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임시 세이프가드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간 체결해온 FTA에서 채택된 바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국경간 금융 서비스 거래에서 소비자 금융은 제외하고, 국제무역과 관련된 선박 보험, 수출입 적하, 항공, 우주선 발사, 재보험, 재재보험, 보험 리스크 평가 등 금융 부수 서비스업처럼 세계무역기구(WTO)의 금융 양해 부문만 개방하는 쪽으로 사실상 합의됐다.
간호사, 의사 등 전문직 분야의 자격증을 양국에서 상호 인정하기 위해 작업반 설치 등 규정이 필요하다는 우리측 주장에 대해 미국은 “협의체를 마련하자”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미국 금융법령에 의해 허용·거래되는 ‘신(新)금융 서비스·상품’에 대해 미국은 자국 금융기관의 현지법인·지점 등을 통해 공급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우리는 “서비스 제공 요건 등에 대해 협정문에 명시하는 방안을 서로 모색해보자”고 답한 상태다.
◇저작권·통신 등 기타=김종훈 대표는 “지적재산권 집행과 침해시 제재방안 등에 대해 많은 진전이 있다”며 “기존 국내법을 개정하지 않고 수용가능한 선에서 대부분 합의가 도출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우선 미국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저작자가 단체 또는 음반 제작자일 때 95년간으로 각각 연장할 것을 요청했고, 우리측은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해서는 외국인 지분을 49%로 제한하지만, 미국은 이를 완화토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해외 주요 국가와 비교하더라도 개방 수준이 높으며 미국에 비해서도 실질적 개방 정도가 낮지 않아 미국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재벌의 경쟁 제한적 행위에 대한 미측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 재벌에 대한 경쟁법 적용을 규정하는 내용을 협정문에 ‘짧게라도’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재벌에 대해 이미 엄격한 공정거래법을 적용하고 있으므로 별도로 조항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도 개방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미국 주장에 대해 “원칙적으로 개방하지 않는다”는 데 입을 모았다. 다만 정책 기능을 수행하는 금융기관이 민간 금융기관과 경쟁하는 분야에서는 ‘공정경쟁 차원의 고려나 색다른 고려’가 필요하다는 부분은 협의 중이다.
노동법 분쟁에 대한 해결 절차에서는 진전이 있었다. 한쪽 당사자가 상대방이 노동법 집행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을 때, 상대방은 ‘30일 이내 의무적으로 협의한다’고 합의했다.
〈최우규기자 banc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