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외국에서 한 1년 정도 살아 본 적 있다.이미 10년도 넘은 일이다.내가 살던 곳은 바다의 푸른 끄트머리가 살짝 보이던 언덕 위의 낡은  하숙집이었다.그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버스에서 내려 언덕길을 10분 가까이 올라서 있었다.덕분에 집값은 동네에서 가장 샀다. 집 주인은 슬로바키아 이민자였다. 연금과 집세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한달에 한번 월세를 주기 위해 2층에 있는 그의 방 문을 두드렸다.그  외엔 그를 만날 이유가 많지 않았다. 가끔 그는 1층에 내려와 불편한 건 없냐고 물어보는 정도였다.

 집 뒤편에 빨래를 널 수 있는 작은 잔디 마당이 있었다. 빨래를 널며 지붕들 사이로 바라보는 바다는 하얀 종이 위에 떨어진 파란 잉크같아 보였다. 내 방 창에선 내가 널어높은 빨래며 푸른 보자기자락 같은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중고 가게에서 산 CD플레이어는 김광석의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를 계속 노래하고 있었다. 난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중에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을 가장 좋아한다. 그 창 밖 풍경때문이다.

비록 1년 정도의 타향살이 였지만 이방인의 고립감과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었다.  U2의 <STAY>란 곡을 이어폰에 꼽고 언덕길을 오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낯선 지붕들과 낯선 담장,다른 향기가 나는 공기,처음보는 나무들과 꽃들...보노의 무덤덤한 목소리와 흑백톤의 선율,소리를 많이 위축시킨 드럼.....내가 느낀 자유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다.

고립감... 내가 느꼇던 고립감은 사회적 비존재로서 느끼는 감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몇 명의 외국인과 한국사람들 외엔 나의 사회적 관계는 전무했다.학교와 집,도서관...그나마 사회적 관계를 갖는 다는 것이 버스나 전철을 타며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과 그 곳 사람들이었다. 공부삼아 그곳 신문을 사서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그곳이 나의 생활터전이었음에도 그곳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마치 한국 TV에서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외신 사건 처럼 느껴졌다. 사건 사고들에도 그렇게 무심했는데 그 곳의 정치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끼리 모이면 '불바다론','성수대교붕괴'등 열올리며 이야기 나눌게 많았고 나의 관심도 그쪽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이게 이민자들의 정서와는 다를 것이다.이민과 단기 체류는 분명히 정체성에 큰 차이가 있다.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에는 이민자들의 향기가 묻어 있다. 작가가 인도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서가 그대로 반영되었을 수 밖에 없다. 그녀는 투명하고 평이한 문장으로 이민자들의 이야기-그들의 정체성,그들이 느낀 고립감,그들의 고민,그들의 자긍심-를 풀어간다.이 단편집의 원제목은 <질병의 통역사>이다.한국판 표지에도 <축복받은 집>이라고 한글로 크게 써있지만 위에는 <Interpreter of maladies>라고 쓰고 있다.이 책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각 단편은 짧지만 이민자들의 삶과 관련된 몇가지 단어들로 수렴된다.

먼저 <축복받은 집>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은 가족이다. 첫 단편 <잠시 동안의 일>에는 아이를 잃고 관계가 소원해진 인도인 부부가 등장한다. 부인에게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산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이성적으로는 남편의 부재를 이해한다.그러나 이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불편함은 남았다. 부인은 별거를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 잠시 동안의 일처럼 정전이 된다. 며칠간의 공사로 그 빛이 없는 시간은 지속된다.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그러나 모든 것은 순서대로.......며칠 간의 정전은 새로운 관계를 위한 카이오스다. 복중의 태아가 어둠 속에서 새 생명을 얻듯이 이 부부도 빛이 사라진 짧은 시간 속에 서로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최근에 인기 있었던 손예진,감우성이 나왔던 드라마. 제목은 생각이 안난다. 꾸준히 본게 아니어서. 그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파르자다 씨가 저녁식사에 왔을 때>는 멀리 떨어진 가족들에 대한 안위를 걱정하는 모든 이민자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파르자다씨의 가족은 파키스탄 분리전쟁의 전장에 놓여있었다. 파르자다씨의 가족들에 대한 마음은 어린 주인공의 눈을 통해 전해진다. 매일 찾아와 저녁을 함께 하던 파르자다씨는 전쟁 소식이 들리지 발걸음이 멀어진다. 주인공의 부모는 TV뉴스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주인공은 수 천킬로 미터 떨어진 파키스탄의 파르자다씨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어떠한 모습으로 어떠한 곳에 살고 있어도 가족을 그리워하고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음 누구에게나 똑같다. 아이는 나의 가족을 넘어서는 '위대한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가족'의 마음을 조금 더 사회적으로 확대시킨 이야기가 <비비 할다르의 치료기>이다. 비비 할다르는 아마 간질 환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치료를 다해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결혼'을 해야 낳는다라는 말이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친오빠 내외는 이러한 말을 무시하고 동생을 귀찮게 여긴다. 그리고 결국엔 아픈 동생을 버리고 도망가버린다. 비비 할다르를 보살펴 주는 것은 함께 사는 마을 사람들이다. 가난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작은 벽돌 한장이라도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선다. 심심해할 그녀를 위해 아이들도 보내 놀게 한다. 나의 가족에게 한정되기 쉬운 사랑이 마을 공동체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줌파 라히리의 마지막 소설<세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은  자전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라히리는 런던에서 태어나서 지금 미국 보스톤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도-유럽-미국이라는 세개의 대륙을 거쳐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인도의 가치를 자신의 세계 속에서 지켜가면서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린다. 소설 마지막에는 이민자들의 자긍심이 가득한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우주 비행사는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몇 시간 밖에 머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신세계에 거의 30년을 머물렀다....내가 여행한 그 모든 거리, 내가 해온 그 모든 식사,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내가 잠잤던 그 모든 방 등을 생각할 때 마나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평범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때로는 그것이 내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이 소설 외에도 <센 아주머니의 집><축복받은 집><섹시>의 단편에는 이민자들의 정체성과 갈등,내적 방황들이 비교적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다. 줌파 라히리는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은어들처럼 자심의 뿌리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소설로 표현해 냈다. 그녀의 애정은 담백하며 투명하다. 9편의 단편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며 각 단편이 하나의 짧은 단막극처럼 인상적이다.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이 책은 내가 샀는데 와이프가 먼저 읽었다. 와이프는 아이를 젖먹이며 줌파 라히리의 책을 읽었다.한쪽 품에는 아이를 ...방바닥에는 책을 놓고....하루 중 수유시간이 꽤 길기 때문에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요즘 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가족이 생겨서 좋다.^^ 책읽는 엄마와  엄마 품에 있는 건강하고 예쁜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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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6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08-18 01:50   좋아요 0 | URL
빙고! 이민자와 단기 체류자의 정체성은 분명 다르죠. 저도 항상 느끼곤 해요.
전 항상 단기체류만 했기 때문에, 외국 생활에 대한 선망(?) 을 갖고 있는 것일 수도...
이 책 몇년 전에 샀는데 아직 안 읽었어요. 무슨 공항에선가 [Interpreter of maladies]를 샀는데,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 <축복받은 집>이란걸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