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달 전 쯤 일이다.함께 일하는 동료 여직원이 점심 시간에 무언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무슨 책을 보나 하고 물어봤다. "뭐 읽어?.... "  " 아...이거요. <아내가 결혼했다>에요. 이 책보셨어요?"  .... "아니" . 그녀는 갑자기 신입사원 만난 보험아줌마 같은 표정을 하더니 "이거 정말 재밌거든요.정말 눈을 뗄 수가 없다니까요.진짜 최고예요 최고.."  퉁퉁한 그녀의 얼굴이 약간 흥분되어 벌게졌다.(그런데 어쩌나 ....다 읽고난 지금 그녀가 최고라고 하던 이 책에 별3개도 겨우 주었으니...용서하시길)

그녀의 흥분된 목소리는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 들렸다. '이사람아...도대체 뭐하는거야.이런 재미있는 책도 아직 안보고.어서 보란 말이야...매일 제목은 그럴싸 해보이지만 뜻도 모를 이상한 책들 들고 다니지 말고...뭐하니 ...진짜 죽인다니까..어이구" .... (이런걸 '자격지심'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다 대고...지가 책을 보면 얼마나 본다고 ..최고니 뭐니 흥분해 가지고..난리부르스를 떨고 있어.'  ....그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그녀의 짧은 흥분과 자랑은 내게 그렇게만 들렸다. 사르트르가 그랬다나.'베스트셀러는 모두가 보기때문에 볼 수 밖에 없는 책이라고'..그에 반해 나의 '자격지심'은 내게 이런 명령을 내린 셈이다. "대중의 취향에 반하라.그래야 상대적으로 네 독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  정말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녀의 알은 체가 이 책에 정나미를 떨어뜨린 것은 사실이다.

그 작은 에피소드 후에 이 책은 바다 건너 대마도 땅 모래밭에 묻혔다.그러다 몇 주가 지났다.그날은 회사 자료실에 들렀다.매일 허접한 책들만 들여오는 자료실.언제나 대여 1순위는 해리포터,김진명류 소설..... 최근에는 어떤 책들이 들어와 있나 쭈욱 살펴봤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1억 당첨금을 받았다며 당당히 서고에 꽂혀 있었다.마치 자기의 몸값이 1억인양 당당하게 말이다. <아내가 결혼했다>에 대한 그녀의 흥분된 목소리가 갑자기 환청으로 들려오는 듯 했다.고개를 돌리고 무시하며 지나갔다.에이..그런데 미운 것에도 호기심은 생기는 법.결국 다시 방향을 돌려  이 책을 집었다. '도대체...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난리야'  몇 장을 넘겼다.그 몇 장의 책장 넘김이 결국 이 책을 다 보게 만든 이유다.소설의 이야기...주인공들의 캐릭터...  몇 장 넘기는 동안 그걸 어떻게 살펴볼 수 있겠는가.나의 시선을 잡은 것은  FC바로셀로나의 이야기였다.FC바르셀로나의 구단 모토...'클럽,그 이상이 되자'.....   다른 장을 마구 넘겼다.지네딘 지단의 이야기,유로 2004의 그리스 우승 이야기,90년대 맨체스터의 아이콘 칸토나 이야기...등등 

이 책을 읽게 만든 건 1억원 수장작이란 후광도 아니고 흥분된 직장동료의 목소리도 아니었다.그것은 단지 '축구'때문이었다.

축구가 도래하기까지 좀 심심했다.마이클 조던이 빠진 NBA는 앙꼬 빠진 단팥빵이었다.차세대 조던들의 승부도 물론 잠시 볼만은 했다.앨런 아이버슨,코비 브라이언트,빈스 카터,포지션은 다르지만 팀 던컨,케빈 가넷...그리고 가장 최근에 르브론 제임스까지...하지만 그 누구도 조던이 가진  아우라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NBA가 지겨워 질 즈음 눈을 돌린 것이 유럽축구였다.때마침 PS의 '위닝'시리즈가 인기가 있던 터라 게임과 축구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내가 관심이 가는 것은 결국 소설의 이야기보다 축구 이야기였다.인터넷에도 나와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지면으로 만나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거기에 소설 속 상황을 축구와 비유하며 인생을 축구의 축소판으로 만드는 작가의 재기어림이 좋았다. 아내의 도발적 실험에 대해 결국 끌려가는 주인공.이혼서류는 만들지만 결국 접수하진 못한다.그리고 이어지는 라이언 긱스의 발언 "축구는 상호비방과 모욕으로 가득한 잔인한 경기이며 나는 분명히 그 주범 중 하나일 거예요"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에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을 부정선수라고 비유한다.그러면서 하는말...'이게 축구였다면 진작 부정선수 개입으로 인한 몰수 게임이 선언되었을 것이다.부정선수로 인한 몰수 게임의 공식 스코어는 3대 0." ...

... 1986년 월드컵 마라도나가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하는 해이다. 어느 방송 해설자의 말이 이어진다. "축구란 혼자서 하는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겁니다.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깬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말도 이어진다.'결혼이란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둘의 가족이 얽히는 것이다.나는 결혼의 개념을 깬 최초의 여자와 같이 살고 있다.그리하여 사는게 참 힘들다.'...심각한 상황에서 매 장 끝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축구비유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즐겁게 만드는 요소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스토리의 도발성과 축구와의 비유를 뺀다면 그다지 인상적인 것이 많지는 않다.제도권 방송의 드라마 소재가 되긴 힘들겠지만-<사랑과 전쟁>쯤은 할 수 도 있겠다-딱 60분짜리 분량의 드라마같다.재기 넘치는 문장,스피디한 사건 전개,만화적인 댓글 사용,(왜 있지 않은가? 슬램덩크를 보면 진지한 강백호가 갑자기 웃기는 강백호로 바뀌는 컷 같은 것들)...이 소설에서 빼어난 풍경의 묘사라든가 심리적 뒤트림의 표현이라든가 뭐 이런거 찾지 않는게 낫다.그러니 미니시리즈는 못되고 <사랑과 전쟁> 정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은 문장에 엽기적(?) 사건이 진행되어 가다보니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가독성이 뛰어나다.또한 빠르다. 눈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게 만든다.이 부분에 촛점을 맞춘다면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소설이긴하다.(하지만 아무리 재미있어도 <미션 임파서블3>가 올해 아카데미에서 좋은 결과를 얻진 못할게고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수는 없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결혼제도와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다.일부일처제와 4인기준 가족이 영구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읽는 이에 따라 이 견해가 충격적이거나 혁명적인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그런데 내게는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다.물론 내가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를 실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학문적으로 결혼이란 제도와 일부일처제의 모순등에 대해서는 수 백권의 책이 나와있다.또한 역사적으로 가족이란 것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는 유럽에 방직기 돌던 시절부터 논의되어 왔다.그러니 일부일처제의 부당함에 대한 여자주인공 인아의 항변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여기 저기 가족제도 관련 책의 어떤 부분을  인용하는 투의 인아의 논리정연함은 작위적이기만 했다.대게 일부일처제란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집에 책이 많은 사람들이다.인아와 재경이 그렇듯이.그 책의 몇 장이 인아의 입을 통해 들린다.인아라는 캐릭터 자체가 전혀 입체적이지도 못하고 내면의 모습을 그려지지도 못한다.(남편의 1인칭 시점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저 축구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결혼제도에 반대하는 '자유'라는 이름을 건 마네킹같다.(대학가에 주인장이 좀 지적인 카페에 밤 늦게 가면 이런 캐릭터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만약 주인공 덕훈이 내 친구 였다면 머리통을 한대 쥐어 박았을 듯하다.도대체 축구 팬이면 축구 팬으로 머물러야지 왜 레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뛰어드냐는 말이다.플레이는 선수가 하는 것이지 팬이 하는 것은 아니다.12번째 선수는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바로 훌리건 취급당해서 끌려나오는 것이다.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은 다른 별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게 두어야 한다.지구별 사람이 거기에 왜 개념없이 뛰어드는지....(어! 그런데 난 어느별에서 왔지?)...그러니 혼자 애가 끓는다.주인공 덕훈이 인아를 사랑하게 된 건 '축구'와 '섹스' 때문이다.축구는 결국 레알이 이기든 바르셀로나가 이기든 현실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덕훈도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된다.결국 인아를 선택하고 지키려는 가장 근원적 이유는 '섹스'때문이다.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는 것...그것만으로도 결혼은 된다.하지만 문어가 고등어랑 섹스하고 만족도가 높았다고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연애질을 하는거야 모르겠지만.여기에 시간이 지나며 제3의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그 다음부터는 '사랑'이란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작가는 열심히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재경의 등장 이후 덕훈에게 남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쟁패'이다.질투심에서 비롯된 승부근성.어떻게든 원래 내 것을 찾아오겠다는  그래서 이 승부에서 이겨야겠다는.(결국 이기지도 못한다.처음부터 이길 수 도 없었고 원래 자기의 것도 아니었다.)

이 상태가 되면 미안하지만 '사랑은 이제 끝'이다.승부만 남았다.(대게 단맛 쓴맛 못 본 남자들이 '승부'와 '사랑'을 혼동한다.그러니 스토커도 나오는거고) 주인공 덕훈에겐 사랑과 결혼에 대한 아무런 철학이 없다.반면 그것이 반사회적일 지라도 인아와 재경에게는 사랑에 대한 철학이 있다. 이런 싸움은 처음부터 하는게 아니다.내가 그의 친구였다면 싸움에 발을 들여놓치 말라고 충고했을 것이다.용납이 되지 않는 상황을 버티기며 익숙해지는게 쿨한게 아니다.돼는 것과 안돼는 것에 자기중심이 있는게 오히려 쿨한거다.접을 때 접고 펼칠때 펼치는게 병법의 기본이며 또한 축구의 기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작가는 결혼제도와 일부일처제의 문제에 대해 알리고 싶었나 보다.하지만 내게는 주인공 덕환의 비주체적 사랑만이 보인다.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의 사랑에 대해 자신의 결혼에 대해 아무런 철학이 없다.끌려 다니다 보니 어느덧 익숙해지는 다부일처제.그것마저도 그는 빌미를 두고 선택한다.일부일처든 다부일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지들 좋으면 된다(그래도 책 속에서 나오는 인아의 주장은 가족제도관련 책을 그대로 인용하는 진부함을 면할 길이 없다) 문제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주체적 선택인가 아니면 비주체적 추종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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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5-28 19:09   좋아요 0 | URL
음....축구 얘기가 나와서 월드컵 두건을 주나 보네요. 왜 뜬금 없이 책 사은품으로 월드컵 두건을 주나 했어요.ㅎㅎㅎ

비유가 압권인데요! "신입사원 만난 보험 아줌마" 음하하하. 나두 신입사원 때 많이 당했는데...중앙일보 뉴스위크도 어리부리해서 구독하고(아...돈 아까버라), 보험도 들고...ㅎㅎㅎ

전 사실 <카스테라>도 단편 몇개를 제외하면 쩜 별로였어요.그럼에도 불구하고...<아내가 결혼했다>가 읽고 싶어 지네요.^^

드팀전 2006-05-29 08:54   좋아요 0 | URL
전 두건 없는데...이 책은 서울가는 길에 역 서점에서 샀어요.올라 갈 때 절반보고 내려올 때 절반보고...ㅎㅎ 책 값이 좀 비싼듯..서점에서 사서 그렇게 느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