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존 테일러 개토 지음, 김기협 옮김 / 민들레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은 교육의 아방궁이다.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것이라면 없는게 없을 정도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포항 제철소 화덕의 불꽃 처럼 활활 타오르는게 교육시장이다. 불황을 모른다.얼마나 활활 타오르는지 늦은 밤에도 각종 학원의 불은 70년대 섬유공장처럼 전등을 밝히고 있다.밤 10시쯤 학원가가 몰려있는 곳을 가본 적이 있으신가? 대로변은 주차장이다.학원의 승합차들이  뱀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다.학원가 주변의 네거리는 밤 10시나 11시에 도로 정체가 생긴다.우스개 소리가 아니다.학원에서 몰려나오는 파김치 같은 아이들을 봉고차는 하나 둘 검은 입 속으로 빨아들인다.신호쯤은 미래의 동량을 위해 비웃어 버리는 학원 봉고차... 봉고차는 반쯤 감긴 눈을 한 아이들을 아파트 앞에 하나씩 퇘퇘거리며 뱉어놓는다.그리고는 다음 목에 걸린 공부 못하는 돌을 뱉어낼 심산으로 휭하니 달려간다.

이 책 은 제목을 잘 뽑았다.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바보만들기>.저자 존 테일러 개토는 뉴욕에서 3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교육제도가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주적이라고 선언한다.한나 아렌트는 말을 인용하면 조금 더 일반화 시킬 수 있다..."전체주의 교육의 목적은 신념을 키워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념이라도 만들어 낼 능력을 박멸하는 데 있다"  존 테일러 개토 역시 의무교육제도에 바탕을 둔 현재의 공교육이 자유로운 생각과 판단을 처음부터 근절시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아이들의 창의력을 앗아 가서 그 자리에 채우는 것은 무었일까? 여러가지 다른 말로 설명가능 하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정부의 생각','국가의 생각'이다.표준화된 교과 과정,표준화된 교과서,표준화된 교사 자격,표준화 된 시험제도...이러한 온갖 종류의 표준화는 기존 사회가 원하는 규격화된 인간형을 만들어 낸다.이렇게 규격화된 인간이 나오면 끌고 다니기 쉽다.하고픈 대로 해도 다 그런가 보다 한다.의문을 갖지 않는 인간형을 제조하기 때문에 현 사회 체제는 균열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그냥 가는 거다..쭈욱.

 저자는 미국적 공교유의 근원이 프러시아 교육제도에 있다고 밝힌다.(미국,일본이 악질적으로 이종교배된 대-한민국 교육은 울트라 슈퍼 프러시아적 교육이다).프러시아는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중앙집권화된 교육제도를 추진한다.아이들을 명령에 순응하는 민족의 기계로 만들어야 열강의 쟁패에서 나아가 싸울수 있는 자원이 되는 것이다.이것이 의무교육이란 형태로 등장한다. 1819년 프러시아의 중앙집권화 학교가 만들어 내고자 했던 인간형은 아래와 같다.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고분고분한 광산 노동자,정부의 지침에 순종하는 공무원,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일하는 사무원,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들..이렇게 시작된 중앙집권화된 의무교육은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이성의 능력을 마비시켜 버렸다.

중앙집중화된 의무교육의 폐해에 대해서 아주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다.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왜냐고? 가장 큰 제약은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국가가 학교처럼 이용하기 좋은 기관을 내놓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둘째로 교육이 '국가독점 사업'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미국의 교육부는 국방부 다음으로 가장 큰 계약체결 기관이다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더 쉽게 말하면 국가의 교육독점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이미 이 체제 속에 너무 많아서 손을 댈 수도 없다는 말이다.교육공무원,학교 선생,학교 교재상,급식업체,교과서 제작자...등등 만약 교육에 대해서 국가의 권력을 조금만 분산시켜도 이들의 이익은 처참하게 훼손된다.이들의 존재는 교육이 절대 국가독점에서 무너질 수 없는 경제적 필요조건이 된다.

저자가 말하는 교육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가장 큰 핵심은 교육을 학교중심에서 가정중심으로 옮기자는 것이다.물론 가정이라는 것이 각 개인의 가정만을 뜻하지는 않는다.학교 이외의 모든 것이 가정으로 상징된다.학교를 제외한 다른 대안적 교육의 길은 너무나 다양하다는 말이다.이는 '교육의 자유시장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그러나 한가지 오해하지 말기를.여기서 말하는 '자유시장화'가 학원장들이 말하는 사교육의 자유시장화는 절대 아니다.그는 현재의 학교 교육이 진정한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진정한 교육과도 먼 학교 공교육이 교육을 독점하고 거기서 배운 부모세대와 그리고 자녀세대의 의식까지 점령해버렸다는 것이 그의 현실인식이다.공교육의 교육독점말고도 다른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교육의 경쟁을 주장하는 것이다.그는 학교가 축소되어야 하지 확대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방과 후 학교 같은 것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들을 밤새도록 학교의 감시아래 두는 몹쓸 짓일 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지역사회와 공동체적 연대 속에서의 교육이다.역사적으로 이러한 아이디어는 미국 건국 초기의 조합교회주의에서 출발한다.마을 주민들이 자율적 연대감에 바탕을 두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다.여기에는 마을의 모든 사람이 주체가 될 수 있다.아이들은 이 속에서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지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지역사회의 다양한 삶의 층위에서 얻어진 지식과 노동의 경험 속에서 생긴 앎을 삶속에 투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교사자격제도' 폐지론자 임을 알아야한다.그는 자격증을 가진 교육전문가만이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가장 큰 사기라는 것이다.진정한 교육은 학교라는 건물 안에서 정부가 정해준 교과서를 가지고 정부의 시험을 통과한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존 테일러 개토가 주장하는 '교육권을 학교에서 가정으로..'의 주장에.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대안교육 모델중  홈스쿨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5000가구의 홈스쿨러가 있다.이들이 받는 가장 큰 오해는 '돈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물론 경제적 토대를 무시할 수 없다.하지만 하나씩 따져 보면 그것도 일종의 신화다. 일단 홈스쿨러들은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욕심이 없다.물론 홈스쿨러들도 종류가 있다.아이가 영재라 믿고 빨리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홈스쿨링하는 부류,아이가 제도권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폭력에 의해 어쩔수 없이 홈스쿨러가 되는 경우,마지막으로 아이와 부모의 신념에 의해서인 경우....처음 경우는 목적을 달성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대안교육으로서의 모습은 아니다.두번째 경우는 1-2년후 홈스쿨링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대안학교를 찾는다고 한다.마지막이 그나마 성공가능성이 높은 경우다.이들의 부모들은 일단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치 않는다.' (나는 이 말 저 말 다 빼고 이게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대신 이 부모들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다.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지 않으니 무리하게 학원 대여섯개 보내는 사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그러니 돈이 무지하게 많이들거라는 생각도 조금은 왜곡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떤 이들은 '그거 다 부모 욕심 아니야'라고 한다. 딱 등가려운대 파리 앉아주는 질문이다. 대안교육이나 홈스쿨링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이들의 선택과 합의 이다.내가 개인적으로 학교교육이 질려서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하고 싶어도 아이의 자발적 선택이 없으면 결국 실패한다.대부분 성공하는 대안 교육은 아이의 자발적 동의와 아이의 구체적 계획이 전제된다. 결국 부모의 욕심때문에 대안교육 한다는 주장은 대안교육의 주장은 맞지만 나는 좀 걱정되고 자신없어서 못 한다고 하는게 오히려 솔직하다...내지는 내 아들은 좋은 대학 나와서 이 땅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든가... 

TV나 신문에서 그런 대안교육 기사를 보다 옆에서 '그거 다 부모욕심 아니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해라.

 "네가 아이들 학원 서너개 씩 보내는 것은 네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니 아니면 다른 비슷한 부모들도 그러니까 그러니?  내가 보기엔 다른 사람이 안하면 너도 그렇게 아이들 혹사시키면서 안할거 같은데..  그렇지? (그럼 대개 그렇다고 한다.)  ..결국 너는 다른 사람의 욕심에 맞추어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구나. 그것보다는 저렇게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의 욕심에 맞추는게 훨씬 나은 거 아니니. 내 아이를 다른 부모 욕심에 맞춰서 키우다니..."

<바보만들기>가 주장하는 교육 변화는 기존 교육의 틀을 전면 부정한다.제목에서 말하듯이 '교육이 바보나 만드는데 그곳에 왜 보내야 하는가...' 존 테일러 개토의 주장은 분명히 역사적,사회적으로 공교육이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그의 주장의 과격함 만큼이나 현실적합성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의무교육제도의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접근은 존 테일러 개토의 주장이 맞다.그 반면에 의무교육 실시가 상당히 빠른 시일 내에 국가의 문맹률을 비롯해서 국민의 교육수준을 높여준 공도 있다.(물론 교육수준이 높아졌다고 삶이 질이 좋아졌냐의 문제는 다르지만) 또한 그가 제시하는 공동체적 교육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근대의 시스템은 마치 공기와도 같다.내가 살아 있는 곳은 근대 시스템이 미치치 않는 곳이 없다.그만큼 촘촘하고 강고하겨 얾혀있다는 것이다.이에 대한 대안의 모색이 이상하게 전근대적 출발을 두고 있는 것은 -이해는 가지만- '좋았던 옛날' 이란 신화에 기대는 듯하다.중국인들이 삶의 이상향을 미래가 아니라 과거 요순시대에서 찾듯 존 테일러 개토의 대안 역시 시민 자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미국 건국 초기에서 찾고 있다.아이디어의 설명을 위해서라면 이해가 가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그러나 이는 현저하게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 역사적 현재성을 무시하고 접근하는 처사이다.물론 개인적 대안으로서의 자율공동체 교육이나 홈스쿨링 등에는 동의한다.나 역시 아주 심각하게 홈스쿨링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홈스쿨링을 지지하는 것과 사회적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기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나 혼자 아이 잘 키우기 위해 홈스쿨링 할 수 있다.'나는 좀 달라.나의 모습을 보고 좀 변화들 하라구' 이것도 교육 변혁의 한 길이라고 믿으며 그만이다.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내가 대안학교를 찾고 홈스쿨링을 하는 것은 개인적 실천의 영역일 뿐이다.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훨씬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현재의 왜곡된 교육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가에 생각이 이어져야 진정한 교육변혁의 출발이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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