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라는 말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가
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
그것을 섬이라고도 부를 수 없어 여라 불렀다
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 검은여......
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
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
영영 물에 잠겨버렸을지도 모를 기억을
햇빛에 널어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여도 있다
썰물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그 바위를 향해서도 여, 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 여가 드러난 것은
썰물 때가 되어서만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 물에 잠긴 여 주변을 낮게 맴돌며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이던 새들 때문이다
그 젖은 날개에서도 여, 라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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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처음 봤을 때....이청춘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어도>를 생각했다.언젠가 TV에서 본 그 섬은 평소에는 바다 밑에 있다가 폭풍이 치거나 하면 잠시 머리를 세상에 보인다고 한다.물 밑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보다 오랜 시간을 존재해왔다....바닷가에 있는 그 작은 바위들을 여라고 한단다. 어느 흐린 오후 바닷가에 앉아서 물 밑에서 살짝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그 바위들을 바라보면 참 여러가지 생각이든다....심연에 가라앉은 상념인가?